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한판 승부를 앞둔 포드·폭스바겐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극적 배터리 합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ICT 판결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추후 사용할 수 없게 돼 급히 다른 공급사를 찾아야 했는데, 양사간 극적 합의로 전략차질 우려가 단번에 해소됐다는 것이다.

1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포드와 폭스바겐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로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지분을 빼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포드는 자사 역사상 최고의 스테디셀러인 F-150 시리즈의 전기차 모델을 준비중이며 폭스바겐은 MEB(모듈형 전기차 플랫폼) 기반 신규 전기차 모델로 공략에 나선다.

포드에서 공개한 F150 전기차 실루엣 일부 / 포드
포드에서 공개한 F150 전기차 실루엣 일부 / 포드
포드와 폭스바겐은 올해 초 SK이노베이션의 ICT 배터리 소송 패소로 골머리를 앓았다. 본격적인 전기차 드라이브를 시작했지만, 주력 차종과 신규모델에 탑재하려던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쓸 수 없게 됐다. ICT에서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지만, 공급구조를 새롭게 설계해야해 전략 차질과 추가 비용 소모는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과 포드입장에서 유예기간은 배터리 공급구조를 재편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라 LG·SK 간 극적합의가 양사에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라며 "전기차 모델에 공급되는 맞춤형 배터리 검증에는 적어도 2년 기간이 소요돼 내년 출시되는 차는 물론 2~3년 후 예정된 신규 모델에도 영향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드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정상적으로 공급받게 되면서 테슬라를 추격할 비장의 무기 출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포드는 자사 역대 최고의 인기 모델 중 하나인 ‘F시리즈’의 전기차인 F-150 EV 출시를 2022년으로 예정했다. F시리즈는 미국 픽업트럭 시장의 절대강자로 포드 매출의 일등공신이다.

포드에서 발표한 2021년 1분기 판매실적에 따르면 F시리즈 판매대수는 20만4000대쯤이다. 포드 1분기 전체 판매대수인 52만대의 절반 가까이를 F시리즈가 올렸다. 포드 전기차 경쟁력은 F-150 EV의 출시로 시작되는 셈이다. 머스탱 마하E가 포드 첫 전기차로 2020년 출시돼 테슬라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올해 1분기 실적은 6600대에 그쳐 부족한 경쟁력만 드러냈다.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공급하는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 / 폭스바겐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공급하는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 / 폭스바겐
폭스바겐 역시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MEB플랫폼 기반 전기차에 원활히 탑재할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폭스바겐은 테슬라가 가진 ‘전기차 시장 1위’ 입지를 빼앗기 위해 중국과 미국 등 세계 전역에서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1일 만우절 장난으로 사명을 북미 법인 명을 ‘볼츠바겐’으로 변경한다는 무리수까지 던지며 마케팅 효과를 노리기까지 했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시장 생존은 폭스바겐에 리스크 감소 효과를 가져다 준다. 완성차 기업은 배터리 리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공급사 배터리를 수주한다. 폭스바겐은 내년까지 27종에 달하는 MEB기반 전기차를 선보이는데, SK이노베이션이 이탈하면 미국 내 공급사가 제한돼 배터리 리스크가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폭스바겐이 파워데이에서 주요 협력체로 선언했던 노스볼트는 유럽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미국 내 폭스바겐 생산차량의 배터리를 담당하긴 어렵다. CATL은 중국 소재 기업이다보니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 행정부 견제를 받아 미국 시장 진입이 사실상 요원하다. SK이노베이션의 존재가 폭스바겐의 미국 시장 전략에 주는 의미가 상당했던 셈이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