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6년 추진하다 유료방송 업계 반발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케이블TV 광역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기존에는 지역별로 케이블TV 사업권을 가진 사업자만 가입자를 모아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런 제약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방송 업계는 IPTV 중심으로 유료방송 경쟁 구도가 변화한 만큼 과거보다 반발이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케이블TV 광역화 후 중소 케이블TV 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기정통부 현판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 현판 / 과기정통부
업계 반발에 제동 걸린 유료방송 광역화, 다시 고개 든다

15일 정부와 방송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개선 정책을 준비 중이다. 2016년 한 차례 추진하다 불발된 유료방송 광역화도 논의에 포함된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내부에서 논의한 유료방송 개선 정책에는 서비스 광역화도 포함했다"며 "과거 진행한 광역화와 완전히 같지 않지만 내용은 유사하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미래창조과학부 시절이던 2016년 12월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유료방송 발전방안은 케이블과 위성, IPTV로 구분된 사업 허가권을 유료방송 사업으로 일원한다는 내용을 담았으며, 규제 원칙은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다.

기존 유료방송 체제에서는 업체 간 인수합병(M&A) 등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역 단위 권역별로 방송을 제공하는 케이블TV 사업자의 서비스 범위를 전국으로 광역화해 M&A의 물꼬를 틀어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정부의 유료방송 발전방안은 업계 반발로 고배를 마셨다. 기존 규제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진행했던 일이지만, 광역화를 할 경우 지역 단위 중소 케이블TV 업체가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고, 관련 내용은 빛을 보지 못했다.

케이블TV 업계 한 관계자는 "2016년 당시 전국 서비스가 가능한 IPTV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었고, 이런 와중에 케이블TV 사업의 사업권역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광역화가 진행될 경우 지역 케이블TV 업체가 사장될 위험이 있었다"며 "유료방송 업계는 정부가 나서서 케이블TV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반발이 상당히 컸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광역화와 함께 기술 중립성도 추진한다. 2015년 12월 내놨던 ‘유료방송 기술규제 재편 방안'의 연장선이다. 유료방송 기술규제 재편 방안은 케이블과 위성, IPTV 등 매체별 전송 방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기술 중립성과 관련해 정책 마련을 완료했다. 현재 마무리 작업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해당 정책을 대외로 발표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가 2016년 12월 미래창조과학부 시절 내놓은 유료방송 발전방안 보고서 세부 내용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가 2016년 12월 미래창조과학부 시절 내놓은 유료방송 발전방안 보고서 세부 내용 / 과기정통부
"개별 SO에 영향 줄 수 있는 피해 대응책 내놔야"

방송 업계는 과거에 비해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유료방송 광역화 재추진에 반대 입장만 내긴 어렵다는 의견을 낸다. 규제 개선 취지를 살리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첫 광역화 추진) 당시엔 업계에서 반대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 5년새 방송 환경이 크게 변화한 만큼 이제는 정책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과기정통부가 당시 추진하던 내용을 그대로 진행하기 보다 현 상황에 맞게 개선할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추진으로 개별 종합유선방송(SO) 사업자가 자칫 피해를 겪을 수 있는 만큼 반대급부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대응책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가 유료방송 광역화를 재추진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직 IPTV와 M&A 등을 진행하지 않은 일부 케이블TV 업체의 반발이 클 수 있는 만큼 광역화 실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또 다른 방송 업계 관계자는 "기술 중립성 토대를 쌓으면 광역화가 쉬울 수 있지만, 케이블TV 사업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광역화 논의가 어려울 수 있다"며 "정부가 당장 광역화를 추진하더라도 수년 안에 이를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내부에 연구반을 꾸려 유료방송 개선 정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과거 유료방송 발전방안처럼 종합적 방안 형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며 "케이블TV의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광역화 등 규제 개선으로 방송 시장의 M&A 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