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선정 과정 논란

정부의 블록체인 기반 백신 접종 증명 앱(백신여권) 상용화를 두고 관련 업계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업체 선정 과정과 기술 검증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질병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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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최근 블록체인 기반 백신 접종 증명 앱 ‘쿠브’를 앱 마켓에 선보였다. 쿠브는 민간 블록체인 기업인 ‘블록체인랩스’가 자사 블록체인 기술을 질병청에 무상으로 제공해 개발된 앱이다. 쿠브는 현재 애플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아직 등록되지 않았다.

기술력, 세계 상대할 정도 맞나

업계 전문가들은 블록체인랩스의 블록체인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블록체인랩스의 ‘인프라 블록체인’은 사실상 프라이빗 블록체인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를 이유로 국가간 백신 접종 여부 검증 활용에는 제약이 크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인프라 블록체인은 세계 어디서든 접근이 불가능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라며 "호텔이나 숙박업소 같은 불특정 다수의 민간이 접속해 백신 접종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는 더더욱 불가능한 구조다"라고 말했다. 국제 통용을 목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백신여권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 블록체인랩스는 자사 기술을 두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퍼블릭 블록체인을 품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고 소개한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퍼블릭 블록체인을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POT)을 제시하는 등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높은 성능과 안전한 데이터 처리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블록체인랩스 백서를 검토한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을 제시했다는 뜻은 곧 해당 알고리즘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다"라며 "퍼블릭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동시에 돌아가는 기술은 있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해당 백서가 DID 기술 구현 내용을 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백서에 따르면 인프라 블록체인의 주된 용도는 금융 플랫폼으로, 탈중앙화 금융(Defi, 디파이)에 적합하다"며 "백신여권을 추진할 정도의 DID(분산형 신원인증) 기술 구현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어 활용 가능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선정 과정도 의문…깜깜이로 이뤄졌나

업계는 블록체인랩스 선정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통상 정부 사업은 나라장터 입찰공고를 통해 이뤄지는 데 반해 이번에는 정부의 일방적인 선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국가 블록체인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IT 대기업을 비롯해 블록체인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업체가 지난해부터 질병청에 백신여권 관련 검토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DID 집중사업을 통해 백신 접종 증명 시범사업을 진행하려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도 포함된다. 통상 국가 블록체인 시범 사업을 실시할 때마다 KISA는 기술 평가 과정을 갖고 관계부처와 논의를 거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랩스 선정 과정에서 질병청은 KISA와 논의한 적이 없다"며 "질병청의 단독 결정으로 DID 기반 백신 접종 증명 시범사업을 추진하려던 KISA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을 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업체를 선정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라며 "이미 선정됐다는 사실 자체가 특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가 안보가 걸린 서비스를 단순히 ‘무상 제공’한다는 이유로 검증도 없이 받아주는 것은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블록체인랩스 "기술력만으로 평가됐다"

블록체인랩스 측은 해당 의문을 모두 부인한다. 블록체인랩스 관계자는 "굴지의 기업들이 질병청에 관련 사업을 문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질병청에서는 기술력만으로 (블록체인랩스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청의 블록체인랩스 선정 배경에는 코인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은 알트코인 광풍으로 인해 도박판을 방불케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블록체인랩스 관계자는 "타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달리 블록체인랩스는 관련 가상자산이 없다"며 "정부의 기술 채택에 따른 수혜주 논란이 없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DID 기술 구현과 관련해선 "중기부가 주관하는 경상북도 규제자유특구 사업에서 의료용 대마 전주기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DID 기술을 적용했다"며 "W3C의 DID 레지스트리에 등록도 마쳤다"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리눅스 재단을 비롯한 세계 각국 기관과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는 만큼 호환성도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