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지만 안 걸려요"
걸려도 ‘벌금’ 조금 내면 그만

종교 유적이나 성스러운 곳을 뜻하는 ‘성지’가 불법의 온상화 됐다. 불법 보조금을 받고 휴대폰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업체 이야기다.

공식 대리점에서만 휴대폰을 개통해왔는데, 처음으로 성지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일부 휴대폰 판매점이 오프라인에서 불법보조금을 받고 제품을 판매하는데, 최근 휴대폰 판매점 업주들이 과천 정부청사 앞에 모여 방송통신위원회가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는 울분을 들은 탓이다. (관련기사: [르포] "폰 팔 때마다 적자납니다"…판매업체, 방통위서 항의 집회) ‘어떻게 불법 영업을 버젓이 하는 것일까’ 궁금했기 때문에 직접 현장을 찾았다.

휴대폰 커뮤니티에서 지역별 성지 업체를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매일 당일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를 안내하는 게시글이 넘쳐났다. 성지가 어디있는 업체인지는 지역과 초성으로만 나와 있지만,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 자리잡은 성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방문해봤다. ‘서현역 ㅎㅅㅍㅊ’라는 초성으로 불리는 해당 업체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인 한신포차 매장 근처에 있었다. 포털에 서현역 ㅎㅅㅍㅊ를 검색하자 매장 외관 사진과 함께 개통 후기를 담은 글을 여러개 찾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검색만 해도 어떤 불법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단속을 피해 영업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경기도 분당 서현동에 있는 한 휴대폰 성지 업체 모습 / 박영선 기자
경기도 분당 서현동에 있는 한 휴대폰 성지 업체 모습 / 박영선 기자
성지 업체의 외관은 일반 휴대폰 판매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실내로 들어가자 고객을 맞이하는 과정 자체가 달랐다.

해당 업체 직원은 방문객이 ‘진짜’ 고객인지 아닌지 부터 확인한다. 원하는 기종과 조건이 무엇인지 성급히 묻지 않는다. 폰파라치(불법 보조금 판매 업체를 신고하는 사람)가 아닌지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구매 조건을 먼저 제시하며 개통을 고민한다는 생각을 드러내자, 해당 직원은 코팅된 종이 한 장을 쓱 보여줬다. 종이에는 폰파라치 감시로 숫자 언급이 불가하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고객 역시 숫자를 언급할 시 폰파라치로 간주하고 상담을 종료하겠다는 ‘엄포’가 적혀있었다. 안내문을 다 읽은 고객 앞에 계산기를 두면 판매 준비가 끝난다.

매장에서 삼성전자 갤럭시S21과 애플 아이폰12의 구매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자, 판매자는 갤럭시S21 조건부터 안내했다. LG유플러스로 번호이동을 하는 것이 조건이 좋다며 곧바로 계산기에 숫자 0을 입력했다. 단말기를 공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단 8만5000원 요금제를 최소 6개월 간 사용하는 조건이다. 부가서비스로 휴대폰 안심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3개월 동안 유지 조건이 붙었다. 월 보험료는 1만5400원이다. 보험 가입 대신 현금 4만원을 납부하는 선택지도 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아이폰12는 64GB 용량의 LG유플러스 번호이동 조건으로 안내를 받았다. 계산기에 적힌 숫자는 13. 갤럭시S21과 동일한 요금제·보험 가입 조건으로 아이폰12 64G 모델을 13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 판매점에서는 어떤 가격에 판매할까. 인근 LG유플러스 공식 대리점을 방문해 문의해보니, 번호이동 고객의 경우 9만2700원 요금제를 6개월 사용하는 조건으로 갤럭시S21은 50만원에, 아이폰12 64GB 제품은 67만8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성지에서 판매하는 단말기 가격을 고려할 때 이래서 호갱(어수룩해 속이기 쉬운 고객을 뜻하는 용어)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 대리점에서 제값 주고 휴대폰을 샀을 뿐인데, 실상은 50만원 이상 비싼 값에 제품을 사는 셈이다.

성지 판매 직원에게 폰파라치나 단속 때문에 문을 닫는 것 아니냐고 넌지시 물어봤지만, 해당 직원은 "그럴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명훈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장은 "온라인 코드를 받아 사업을 하는 업체가 오프라인으로 고객을 유도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며 "기존에는 오피스텔과 같은 음지에서 조용히 제품을 판매했지만, 최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판매 코드를 내주지 않자 버젓이 길거리에 매장을 낸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가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 / IT조선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가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 / IT조선
단속으로 걸릴 일이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서 회장에 따르면, 규모가 큰 성지는 안테나 숍(KAIT가 시장에 뿌려지는 불법보조금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섭외한 매장)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애초에 KAIT가 포섭한 매장이니 단속 대상이 아니다.

KAIT가 단속을 할 때 매장에 게시된 광고문을 보고 단속을 하기 때문에 성지가 적발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현금 판매 20만원’이라는 문구가 영업점 앞에 붙어 있을 경우 KAIT는 해당 매장을 단속하는데, 성지의 경우 이미 고객이 온라인으로 가격 조건을 미리 파악한 후 방문하기 때문에 매장 앞에 광고문을 붙일 필요가 없다.

휴대폰 판매점 업주들은 성지를 신고하고 싶어도 신고할 수 없다. 직접 성지에서 구매한 사람이 신고해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 탓이다. 업주들이 성지에서 단말기를 개통한 후 신고할 경우, 동종 업종 종사자라는 이유로 신고 행위 자체가 인정이 안된다. IT조선 역시 불법 보조금 안내를 받은 후 실제 개통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업체의 불법 행위를 신고할 수 없다.

단속 후 불법 성지가 적발되더라도 소액의 벌금만 내면 그만이다. 서명훈 회장은 "하루에 불법보조금으로 40만원 이상을 지급한 경우 200만원 정도의 벌금으로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달 수익이 몇천만원 단위인 성지는 벌금 내고 새로운 사업자를 등록해 또 다시 불법을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 측은 "방통위는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며 성지 단속에서 손을 놓고 있다"며 "업종 종사자가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불법 성지를 색출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영선 인턴기자 0s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