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레고블록을 보며 미래의 일과 일자리를 생각한다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1.05.24 06:00

    손주가 즐겨 가지고 노는 레고블록을 보며 미래의 일과 일자리를 생각해 본다. 40년 전의 레고블럭은 똑 같은 기본형 외에 몇 가지 모양이 구성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은 스토리가 있는 다양한 여러 모형을 만들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기본 블록 외에 특수한 용도의 크고 작은 다양한 블록들이 잔 조각처럼 포함되어 있다. 모터가 장착되기도 하고, QR 코드, VR, 센서, 앱연동 같은 기술이 채택되기도 한다.

    세상은 수많은 다양한 일로 유지된다. 기본적으로 상시 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특수하게 필요한 일시적인 일이 있다. 과거에는 특수한 일보다 일반적인 일이 대종을 이루었다.

    몇 개의 직종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고시(공무원시험)나 기업의 일괄 채용제도는 일반적인 일에 적합한 제도이다. 순환보직도 마찬가지이다. 전문성이나 특수성의 고려가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무슨 일을 시켜도 잘 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종신 고용 또한 상시적인 일에 적합한 고용 형태인 것이다.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꾀한다고 하지만 일의 입장에서 보면 변화가 필요하다.

    40년전의 레고블럭처럼 기본블럭만 가지고 여러 모형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의 일과 능력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시적인 일들이 수두룩한데 여전히 일괄채용에 종신고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모든 일이 보편적이고 항구적이라는 생각과 한번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으니 비정규직 제로 같은 시대착오적인 선언을 하게 된다. 시대 변화와 현장에 부합하지 않으니 여러 부작용과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일자리를 늘리고 일자리를 안정시키겠다고 내놓는 정책이 점점 일자리를 축소시키고 일자리 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다. .

    세상에는 어떤 일이 존재하고, 그 일의 성격이 어떻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레고블럭 처럼 직업(직군)의 종류도 불과 수 백 가지에서 수 만 가지로 늘어있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모든 일자리를 한번 입사해 정규직이 되어 정년을 마치는 것으로 규정하면 세상을 운영할 수가 없다. 기본 블록만으로는 멋드러진 모형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히려 점점 더 특수한 능력(조각)으로 일시적인 계약에 의한 일시적 일자리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소위 긱워커(geek worker)가 천지인 세상이다. 불행하게도 더 이상 누가 누구를 고용하고 누구를 책임지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일자리에 관한 한 인지부조화 상태에 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정규직, 고용안정 같은 고용조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든 필요한 곳을 찾을 수 있으며, 스스로 고용하기도 한다. 요즈음 IT 개발자, AI 전문가, 반도체기술자 등이 그렇다. 고층 건물이 늘어나면서 고층 건물 외벽 청소인력이 대표적 긱워커이다. 정규직, 종신고용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고 대우도 잘 받을 수 있다. 모터나 IT 기술이 장착된 레고블록처럼 대우를 받고 언제든지 중요하게 쓰일 수 있다.

    과거 안정적인 일자리였던 일반적인 사무직이나 생산직들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우리사회에서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가장 보장 받고 있는 계층이다. 꼭 필요한 고위 경영자나 관리자들을 제외하면 로봇화, 자동화의 대상이다. 레고블럭의 기본블럭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재 노동조합에도 가입되어 있지 못한 열악한 진짜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기본블럭도 되지 못하는 반절짜리 조각들이다.

    일자리 정책 당국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 이제 사라져가는 일자리를 대변하는 과거의 노동주도 세력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노동정책만으로는 일자리를 만들 수도 일자리를 지킬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 어떤 특수 일자리들이 늘어나는 지 파악해 그 인력을 키우고, 그들의 일 형태에 맞는 고용 및 일자리정책을 세워야 한다. 또 점점 사라질 전통 안정적 일자리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노동갈등을 내재하고 있는 대표적인 계층이다. 금융권이 대우는 좋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는 고용이 줄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역시 노동조합에 가입도 못하는 열악한 일자리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를 말하는 정치권과 정책당국자들의 세상읽기가 절실하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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