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미 역사소설] 그림자 황후 2부 (2) 사무라이의 메이지유신

  • 손정미 작가
    입력 2021.05.21 23:00

    [그림자 황후]

    2부 (2) 사무라이의 메이지유신

    "내 술도 받으십시오."
    태웅은 나가노 교타로의 손을 초계로부터 쳐내고 술을 따랐다.
    "일본 무기가 상당히 정예해서 서양 무기와 견줄만하다고요. 어찌 그리 신통하게 되었습니까?"
    "그 얘기는 며칠 밤을 새워야 합니다. 나는 내일 돌아가야 하니 오늘은 자 술이나 마십시다."
    "어찌 내일을 걱정하십니까?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초계가 즉각 시를 읊었다.
    "그대에게 거듭 술 한잔을 권하노니, 국경 밖으로 나가면 친구가 없으리오. 왕유로군!"
    교타로가 무릎을 치며 헤벌쭉해졌다.
    "좋소! 구로후네(黑船)! 우라가 항에 나타난 미국 흑선부터 말하지. 시커먼 군함 네 척이 나타나 불을 뿜자 막부가 뒤집혔소. 페리가 개항을 하라며 나타난 건데, 우리에겐 ‘악마의 배’였소. 막부는 무시무시한 화력에 질려 싸우지도 못하고 항복해 버렸소. 일본을 문명개화시키겠다고 나타났다고 하더군. 우리는 그때 고급 옷감과 부채, 도자기를 선물로 줬는데, 페리는 문명의 상징인 모형 기차를 답례품으로 줬소."
    "일본하면 무사들이 많은데 어찌 그리 당했습니까?"
    태웅은 슬쩍 비꼬며 술을 털어 넣었다.
    "상대가 못 됐소. 막부의 허약함을 본 조슈와 사쓰마 같은 힘 있는 번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무능하고 부패한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폐하를 세워 오랑캐를 물리치자는 거였지. 지옥 같은 혼란과 암살, 모략이 이어졌소."
    "막부의 쇼군이 무너지고 왕이 다시 나서게 된 건가요?"
    "왕이 아니라 천황폐하시오! 쯧 솔직히 막부 정권에서는 쇼군이 최고 실력자고 천황은 교토에서 눈치나 보며 지냈지. 백성들은 천황이 있는지조차 잘 모를 정도였으니까."
    "조슈, 사쓰마? 어찌 막부에 대들 수 있었습니까?"
    술이 잔뜩 오른 초계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일본에는 번(藩)이 200개가 넘어요, 번주들은 자기네 영토와 농민을 다스리니까 소국의 왕인 셈이지. 그중 사쓰마와 조슈가 땅도 크고 쌀도 많이 나는 웅번이었소. 메이지유신은 조슈와 사쓰마의 무사들이 일으킨."
    "일으킨?"
    태웅이 귀를 세웠다.
    "에-또 혀를 잘못 놀리면 목이 뎅강 떨어지는데. 메이지유신은 조슈와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혁명이지. 천황을 세우긴 했지만 막부를 몰아내고 자기들이 차지한 셈이지."
    "그렇다 쳐도 어찌 그리 빨리 서양 오랑캐처럼 됐을까?"

    술에 취한 초계의 눈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위태로우면서도 고혹적이었다.
    "쯧 이토와 이노우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두 사람도 조슈 출신이오. 이토는 어려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숭배했다는군. 아무튼 이토는 메이지 정부에서 참의와 공부경(工部卿)까지 지냈는데 전에는 말하자면 자객이었소. 지사란 말로 미화하지만. 하나와 지로를 베었고 그 외도 몇 명을 직접 벤 인물이오. 더 기괴한 이야기도 있지만…."
    "살인자가 그리 높은 관직을 맡는단 말입니까!"
    "음- 일본은 무사의 나라요. 쇼군을 최고 정점으로 층층이 나뉜 거대한 무사 집단이오. 무사가 무엇이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거 아니겠소."
    이때 교타로가 보자기를 휙 벗기자 일본도가 나타났다.
    칼날이 뱀 혓바닥처럼 낼름 거리고 있었다. 시퍼런 날에서 소름 끼치는 광택이 났다.
    "나 역시 어릴 때 무사 집안에 입양되었소. 이토는 원래 저 아래 하급 무사고, 이노우에는 상급 무사인데 어찌 둘이 친하게 됐는지. 조슈 번주는 서양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니까 다급해져서 5명을 몰래 배워오라며 영국으로 보냈소. 그중 두 명이 이토와 이노우에였소. 운임까지 내고 영국 배에 탔는데도 동양인이라고 쓰레기 취급을 받은 거야. 승객용 변소를 쓰지 못하게 해서 볼일 볼 때마다 밧줄을 몸에 감고 배 밖으로 배설해야 했다나. 런던에 도착했는데 웅장한 건물과 기차, 군함, 기계공장을 보니까 충격을 받은 거지. 급히 귀국해 서양을 무찌를 게 아니라 막부를 무너뜨리고 서양을 배우자고 돌아섰소. 이토는 영어를 좀 안다고 중용되더니 참의까지 올랐으니 천운을 타고 났지."

    "상해에서 중국인들도 봤지만 서양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데…."
    "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다음 외국을 시찰하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꾸렸소. 메이지 주역인 오쿠보 도시미치와 기도 다카요시가 각각 사쓰마와 조슈를 대표해서 들어갔어요. 유럽과 미국의 의회와 재판소, 조선소를 보고 전신과 우편, 교육 시설을 보면서 충격받은 거지. 2년간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12개국을 보고 와서는 서구화를 대대적으로 밀어붙였소. 공식 사절만 46명에다 유학생도 40명이 넘었었소."
    교타로가 하품을 찢어지게 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앗!"
    초계가 칼날에 손끝을 살짝 대보다 베었다. 선홍색 피가 뚝뚝 떨어졌다.
    태웅이 잽싸게 다가와 손가락의 피를 빨았다. 초계는 그 행동에 놀라 태웅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초계는 뜨겁고 보드라운 입안으로 들어간 자신의 손가락이 부끄러워 몸이 뜨거워졌다.

    "ばかやろう! (바보자식!)"
    교타로가 벌떡 일어나 나가더니 광목 조각과 책 한 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걸로 감으시오. 쯧쯧. 말하다 보니, 후쿠자와 유키치 선생이 생각났소. 일본의 문명개화를 부르짖은 분이오. 선생의 저작이 많은데 이건 내가 요체만 뽑아 놓은 거요. 그리고 징병제가 되면서 농민들도 입대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는군. 서양식 무기에다 서양 군복을 입으면서 서구화에 물들게 됐다고 할까."
    태웅은 책을 받아 집중해서 속독을 시작했다. 한번 보면 암기가 가능했다.
    "말하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이 나네. 나가사키에 화란(네덜란드) 상인들이 체류하던 데지마섬이 있소. 흑선이 오기 전부터 거기서 난학(蘭學)이 발전해 서양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 거요. 번주들이 살아남으려고 무기를 개량하고 서양의 정보를 얻으려고 발버둥친 것도 밑거름이 됐겠지."
    교타로는 어느 틈엔가 초계의 어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고것 참 이쁘장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계집인가?’
    "일본으로 한 번 오시오. 남자건 여자건 견문을 넓힐수록 좋은 것 아니겠소? 이와쿠라 사절단에도 여자가 5명이나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초계의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일본놈들도 여자를 유학 보냈다고?’

    "에도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중전마마께서 허락해주신다면."
    태웅이 교타로를 쏘아보며 말했다.
    "중전마마?"
    "예 우리는 중전마마의 당질들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실례가 있었다면 용서하시오!"
    교타로가 갑자기 머리를 굽신거렸다.
    "마지막으로 서계(書契)는 일본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는 걸 설명하고 일본과 조선이 다시 교류하자는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 접수를 거부하면 결과는 심각해질 것입니다."
    번쩍-
    우르르 쾅-
    교타로가 물러가자 거센 비바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2부 3화는 2021년 5월 28일 23:00 공개합니다)

    그림자 황후 2부 (1) 국선(國仙)의 후예

    그림자 황후 1부 (30) 아버지와 아들
    그림자 황후 1부 (29) 운현궁의 횃불
    그림자 황후 1부 (28) 배 띄워라
    그림자 황후 1부 (27) 섭정을 받는 청 황제
    그림자 황후 1부 (26) 조선을 떨게 한 다섯글자
    그림자 황후 1부 (25)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그림자 황후 1부 (24) 순원왕후의 유산
    그림자 황후 1부 (23) 화폭에 옥린을 담다
    그림자 황후 1부 (22) 하얀 치파오
    그림자 황후 1부 (21) 연경의 미녀를 보러 가다
    그림자 황후 1부 (20) 도련님과 홍매
    그림자 황후 1부 (19) 피 묻은 다홍저고리
    그림자 황후 1부 (18) 10년만의 만남
    그림자 황후 1부 (17)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16) 왕자 탄생의 의미
    그림자 황후 1부 (15) 수상한 그림책
    그림자 황후 1부 (14) 첫날 밤
    그림자 황후 1부 (13) 조선을 뒤흔든 혼례
    그림자 황후 1부 (12) 왕비 간택
    그림자 황후 1부 (11) 너울이 벗겨지다
    그림자 황후 1부 (10) 승은(承恩)을 입다
    그림자 황후 1부 (9) 궁녀 이씨
    그림자 황후 1부 (8) 열두 살 명복 왕위에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7) 동백꽃
    그림자 황후 1부 (6) 속치마를 벗고 먹을 갈다
    그림자 황후 1부 (5) 월창(月窓)
    그림자 황후 1부 (4) 소녀의 슬픔
    그림자 황후 1부 (3) 한성(漢城)
    그림자 황후 1부 (2) 왕후족
    그림자 황후 1부 (1) 세상을 갖고 싶은 소녀

    손정미 작가 소개

    ※손정미 작가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20여년간 조선일보 사회부·정치부·문화부를 현장 취재했다. 2012년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경주를 무대로 삼국통일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왕경(王京)’을 시작으로 고구려 소설 ‘광개토태왕(1·2)’,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공 서란’을 썼다. 주요 문화재를 역사적 배경에서 심층적으로 풀어 쓴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가 2020년 가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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