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 막아도 순식간...신상 그래픽카드 또 웃돈 되팔이

입력 2021.06.05 06:00

엔비디아가 1일 공개한 새로운 플래그십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3080 Ti’가 3일 늦은 저녁을 시작으로 공식 판매됐다. 하루 전부터 공개된 성능에서 상위 모델인 ‘3090’에 거의 근접한 게임 성능을 보이면서 게이머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특히 이번 모델은 처음부터 암호화폐 채굴 효율을 낮춘 ‘LHR(Lite Hash Rate)’ 기능을 적용한 만큼, 채굴 시장이 아닌 소비자 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기대가 통했는지, 3일 저녁 3080 Ti의 구매에 성공했다는 소비자들의 경험담이 이전 다른 제품들보다 부쩍 늘었다. 어떠한 모델이든 판매를 시작하면 몇 초 되지 않아 순식간에 ‘품절’되던 것과 달리, 판매 시작 후 수 분이 지나도 재고가 있을 정도로 훨씬 여유가 있었다는 것.

지포스 RTX 3080 Ti 기획전을 진행한 옥션의 행사 배너 / 옥션
무엇보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기존 3080, 3090보다 훨씬 저렴(?)한 175만원 안팎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판매처당 물량도 많은 곳이 10개~20개 전후였던 것을 감안하면 경쟁이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다는 평이 나왔다.

구매 경쟁이 완화된 것처럼 보였고,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4일 오전부터 판매하는 3080 Ti 물량의 구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졌다. 옥션 등 일부 쇼핑몰은 3080 Ti를 위한 별도의 기획전까지 마련했고, 일부 유통사들도 각각 판매 예정 시각을 공지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하지만, 4일 오전부터 시작된 3080 Ti의 온라인 판매는 이전 ‘채굴 대란’ 못지않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전날 밤이 분위기 파악을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던 것처럼, 4일 판매 물량은 브랜드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3080 Ti 제품들이 판매 개시 수초 만에 매진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쇼핑몰의 기획전 페이지는 약속한 판매 시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링크가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약속한 판매 시간이 되자마자 몇 초 만에 매진되고, 물량이 동나면서 구매 링크가 열릴 틈조차도 없었다.

어떻게든 제품 링크를 찾아서 들어가 보니, 이미 매진된 지 한참 된 제품에 여전히 1000명 단위의 대기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5분쯤 지나 대기 순번이 끝났고, 겨우 들어간 제품 판매 페이지에는 매정한 ‘품절’ 표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중고나라에 올라온 지포스 3080 Ti 판매 게시글 모습 / 중고나라 카페 갈무리
아니나 다를까. 판매 개시 시각 이후 중고나라 등 사이트에는 각종 쇼핑몰에서 판매했던 3080 Ti 그래픽카드 제품들이 ‘미개봉 신품’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통사들이 쇼핑몰에 고지한 가격에 수십만 원씩의 웃돈이 붙은 것은 덤이다. 채굴업자들이 손을 털고 물러났음에도, 매크로를 앞세운 전문 리셀러들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다.

결국, ‘채굴 성능 제한’만으로는 그래픽카드 시장이 당분간 정상화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채굴 대란 이전부터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았고, 그 수요가 대란 이후에는 모두 대기 수요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차익을 노리는 리셀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도 젠슨 황 CEO가 직접 나서 GPU 공급 물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규모의 반도체 부족 현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혼자 노력해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음 주인 10일에는 3080 Ti보다 더 많은 구매자가 기다리고 있는 주력 제품군인 ‘3070 Ti’가 판매될 예정이다. 반년 넘게 기다려온 게이머들이 원하는 그래픽카드를 손에 넣고, 좋아하는 게임들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