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법 만능주의와 과잉 입법의 폐해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1.06.14 06:00

    미국은 총기 난사 같은 턱도 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불법체류자들의 처리나 인종 차별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생명과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이다.

    어디를 가나 안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엄한 조치가 이루어지며 완벽에 가까운 설비를 갖추고 있다. 도로에서는 어린이들의 교통안전을 위한 시설과 운영의 철저함을 본다. 또 장애인들의 이동권, 교육받을 권리, 보호받을 권리, 소통할 권리 등을 위한 제도에 더해 시설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사실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잘 지키는 국가가 선진국이다.

    최근 교통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와 산업재해가 증가하면서 입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전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법 만능주의가 자리잡고 있고 균형을 상실하고 있어 실효에 의문을 갖게 한다.

    아동 보호 구역에서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보호구역 내 신호등, 과속카메라 등의 설치와 더불어 안전의무 불이행에 대해 가중처벌을 규정하는 법(민식이 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운전자의 의무규정이 모호하고, 어린이 당사자나 보호자의 의무 규정이 없이 운전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는 법이 되었다.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이 운전자들을 놀래 키기 위해 민식이법놀이를 한다고 한다.

    사실은 운전자도 운전자이지만 보호대상인 어린아이를 도로에 내놓은 보호자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참고로 전동킥보드를 13세 미만이 이용하면 보호자를 처벌한다.

    안전속도 5030만 해도 그렇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시의 간선도로에서는 시속 50km, 이면도로에서는 30km로 규정한 것이다. 이면도로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간선도로의 형편이 다 다르고 시간대에 따라 교통흐름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정한 것은 너무 편의주의적이다. 서울만해도 강북과 강남의 도로 폭이나 교통량은 너무 차이가 난다. 시간대에 따른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인공지능, 센서기술 등을 활용해 얼마든지 지역이나 시간대별로 가변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을 시민의 편의나 국가적 부담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 많은 국책연구소나 경제연구소에 의뢰해 일괄적으로 시속 10km를 줄이는 것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지우는 일인지, 온실가스 배출은 얼마나 더 늘어나는지 연구라도 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연이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청원이 늘어나자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조치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이 법 역시 애매모호하고 균형이 어긋나 있다. 우선 안전조치에 대해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하나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사고의 방지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안전조치에 대한 세세한 규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러한 안전조치를 통해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사고의 책임에 대해서도 균형상의 중대한 결함이 있다. 중대재해는 산업재해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재해를 포함하고 있다. 기업증오법이 아니라면 국가 경영 중 발생하는 미연방지가 가능한 재해(소위 ‘인재’)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을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하청기업 내의 재해도 원청에 책임을 물으려면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의 하청업체 내 사고도 똑같이 다뤄져야 한다.

    또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차제에 개인의 안전수칙 불이행에 따른 책임도 정의되어야 한다. 모든 사고에 대해 사업주나 경영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할 뿐 만 아니라 타당하지 않다.

    벌써 안전담당 경영자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안전조치를 강화하기 보다는 처벌을 덮어쓰기 위한 자리라고 한다. 기업이 안전보다 이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재해가 늘고 있다는 시각도 아주 잘 못된 것이다. 이런 비판을 하는 정치인이나 장관들에게 정부가 운영하거나 발주하는 모든 사업에 안전조치 비용을 충분히 지불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에만 책임을 부과하면 기업도 또 그 책임을 전가할 길을 찾기 마련이다. 사업을 축소시키든지, 자동화 속도를 높이든지, 하청을 줄이든지, 하청업체의 의무수준을 높이든지 어떤 길이라도 찾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왜곡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듯 균형감을 상실한 법들이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 살펴야 한다. 법의 제정에도 과잉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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