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수혜를 입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돕는 OTT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서비스의 한국 시장 진출도 가시화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정부 주요 부처는 최근까지 OTT 주무 부처 자리를 놓고 다양한 논리 개발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미디어생태계 전략에 따라 핵심 자리를 차지할 듯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견제에 나섰다. 국회에서는 자주 토론회가 열리는 등 특정 부처에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도 많았다. OTT 시장의 핑크빛 전망이 부처 간 힘겨루기를 조장했다.

하지만 최근 OTT 업계에 부는 콘텐츠 이용대가 관련 분쟁을 보면, 얼마 전까지 보인 정부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기업 간 거래 상황인 만큼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을 뿐, 누구 하나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방송통신위원회만 금지행위인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했을 뿐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았다.

사업자 간 거래 내용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원론적 입장은 있겠지만, 큰 정부를 표방해 온 정부가 인제 와서 발을 빼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금의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나쁘게 말하면, 정부는 이해관계를 따져 이로우면 붙고 이롭지 않으면 돌아선다는 의미의 감탄고토(甘呑苦吐) 형국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보다 못한 방송업계 스스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각기 운영해 온 ‘유료방송-PP 상생 협의체’와 ‘방송 채널 대가 산정 협의체’를 통합한 ‘유료방송상생발전협의회’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낸다. 정부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콘텐츠 이용대가와 관련한 이슈는 유료방송 개막과 함께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대표 분쟁 중 하나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급자는 비싼 가격을 원하고 수요자는 싸게 받고자 한다. 양측간 입장차에 따라 시청자를 볼모로 한 블랙아웃 상황이 발생하는 등 악화 일로를 걷기도 한다. LG유플러스 모바일 TV에서 tvN 등 CJ ENM 채널을 볼 수 없는 것도 콘텐츠 사용료 불화에 따른 결과물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본다. 과거에도 콘텐츠 사용료 관련 분쟁은 있었지만, LG유플러스의 모바일 tv처럼 장시간 실시간 방송이 블랙아웃 되는 상황은 사실 드문 경우다.

콘텐츠 납품 가격은 제작사가 정하는 것이 원칙이고, 지상파를 위시한 프로그램 공급자(PP)는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유료방송 사업자와 대가 관련 협상을 한다. 그 과정에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콘텐츠 공급사는 매번 가격 정상화를 외치고, 수요자는 콘텐츠 제작 원가를 공개하라는 주장만 펼친다. 관계가 틀어지면 LG유플러스 사태처럼 일촉즉발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한다.

CJ ENM과 IPTV 업체 간 분쟁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양측 모두 명분을 갖췄다.

CJ ENM은 IPTV와 연계한 실시간 채널 공급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OTT 위상이 높아지는 등 상황이 변화한 만큼 제값을 받겠다는 주장이다. 80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 계획도 가격 인상 요구에 힘을 보탰다. 반면 LG유플러스 측은 기존 대비 2.7배 높은 가격에 계약을 맺자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KT에는 1000%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업계에 따르면, CJ ENM이 넷플릭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콘텐츠 이용 대가를 받는 것도 블랙아웃 결정에 영향을 줬다. IPTV 한 회사에서 넷플릭스로 넘어가는 연간 이용료는 200억~3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한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에 이어 KT로 계약 대상을 넓혔다. 2020년 한국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4155억원에 달한다. 한국 진출을 노리는 디즈니플러스 역시 IPTV 플랫폼 사업자에 연간 수백억원 단위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 "5개 실시간 채널을 공급하는 CJ ENM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는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콘텐츠 이용 대가에 대한 논란을 계속해서 기업 간 이슈로 남겨두는 것이 맞을까. 어차피 수익을 원하는 기업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보다 자사 이익에 더 관심이 높다.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LG유플러스의 모바일 TV에서 CJ ENM 5개 채널이 빠진 만큼 가입자는 손해를 본다. LG유플러스가 5개 채널 블랙아웃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빠른 협상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콘텐츠 이용 대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 정부가 전적으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여지나 통로는 만들어 줘야 한다. 정부가 너무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부담이 지속한다면, 합리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식으로 대응 전략을 변경하면 된다. 지금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 아닌가. 얼마 전까지 서로 주무 부처가 되겠다고 치열하게 다퉜던 OTT 분야에 대한 열정을 콘텐츠 이용 대가 분쟁에도 쏟아부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누가 OTT 주무 부처인지를 보여주는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다.

이진 디지털산업부장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