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이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한다. 게임 개발사에서 지적재산권(IP) 사업자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연구개발(R&D) 규모를 대폭 늘렸다. 올해에는 대규모 지분 투자에 나서면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다소 늦은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부터 3년간은 투자를 꾸준히 줄여왔기 때문이다. 이를 이유로 크래프톤의 성과가 나오는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구개발 역대 최대규모...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제작도구 개발

최근 콘텐츠 수요가 많아지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ver The Top, OTT)와 게임사 경계는 허물어지는 추세다. 게임사들이 자사 IP를 OTT에 공급하는 한편, OTT기업은 자체 콘텐츠를 게임으로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크래프톤 역시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담은 단편영화 ‘그라운드 제로’를 제작, 이달 말 선보인다. 크래프톤 상장주관사가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 등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관사는 크래프톤의 시가총액을 35조736억원으로 책정했다.

크래프톤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연구개발 규모를 대폭 늘였다. 올해 1분기 연구개발에 쓴 비용은 645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6억원과 비교해 18배 급증했다. 총 매출에서 연구개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7%에서 14%로 불어났다.

연간으로 보면 변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는 2088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전년 150억원대비 14배로 차이가 상당하다.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12.5%로 열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크래프톤이 IP 확보에 열을 올린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연구개발 비용은 본사 조직과 종속회사 부설연구소 인력의 인건비가 주를 이룬다. 크래프톤은 블루홀스튜디오를 포함해 총 5개의 자회사에서 신규 콘텐츠 개발과 관련 제반기술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 관련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효율적인 콘텐츠 제작도구를 개발하고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목표다. 크래프톤은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이용자의 게임 플레이 패턴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는데 활용되어 향후 당사의 핵심자산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1분기 투자현금흐름 사상최대, 인도시장 진출도

투자 규모도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 투자활동현금흐름은 1391억원이 유출됐다. 전년동기 60억원 대비 23배 남짓한 규모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품을 제작하려면 기계를 마련하는 등 투자를 해야 한다. 여윳돈으로 금융자산을 사거나 부동산 등을 매입해 현금을 불리기도 한다. 대게 게임회사는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이나 게임관련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사업확장에 활용한다. 이를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출이라고 한다. 유출금액이 늘면 그만큼 투자도 늘었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크래프톤은 무형자산 23억원, 투자부동산 952억원, 관계사 주식을 매입하는 데 257억원을 썼다. 이중 인도 E스포츠 기업 노드윈 게이밍(NODWIN Gaming) 투자가 눈여겨 볼 지점이다. 3월 크래프톤은 노드윈 게이밍의 지분 15%를 257억원에 매입했다.

인도는 동남아와 중동을 포함해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는다. 크래프톤은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누적 다운로드 약 1억7500만건을 기록하고 전체 다운로드 건수의 24%를 차지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했다. 지난해 11월에 인도 법인을 설립한 것도 사업 확장 가능성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인도 이용자들의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면서 향후 전략적 협업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총 매출에서 아시아 시장의 매출 비중이 올해 1분기 87.4%로 전년동기 보다 1.5%포인트 줄어든 만큼 인도 시장 비중을 늘려 실적 개선에 나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연구개발 성과 ‘미미’…뒤늦은 투자 확대


다만 투자 확대가 올해 1분기에 본격화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크래프톤의 투자현금흐름은 2017년 연간 1732억원, 2018년 1분기 943억원을 기록한 이래 계속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금성 자산은 2130억원에서 7900억원으로 세배 이상 불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는다는 목표치고는 투자가 꽤 늦은 셈이다.

연구개발 성과가 미미한 점도 숙제다. 무형자산 항목 중 개발비 추세가 이를 잘 나타낸다. 기업은 연구개발에 쓴 자금 중 수익이 가능한 기술이나 제품에 들어간 돈은 무형자산으로 인식한다. 이를 ‘개발비 자산화’라고 한다. ‘기타 무형자산’도 비슷한 내용의 회계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게임회사는 개발사 등에 지급한 퍼블리싱 계약금(선급금)을 기타 무형자산으로 인식한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비라이브’ 게임에 투입된 자금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쉽다.

크래피톤이 올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수년간 크래프톤의 개발비 취득은 거의 제로 상태다. 회계상 연구개발 성과가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IP 개발을 게을리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다만 지난해 기타무형자산이 67억원으로 처음 등장한 점은 위안거리다. 개발비 자산화도 3.2%로 잡혔다. 올해 늘어난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신작 IP가 출시될 경우 자산화 성과를 기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크래프톤 측은 "다양한 장르에서 경쟁력 있는 게임 제작 능력을 갖춘 독립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 개발을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게임 사업뿐만 아니라 딥러닝과 엔터테인먼트 등 새로운 분야의 사업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인도와 중동을 포함한 해외 시장의 게임 및 새로운 영역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