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금융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고정된 틀에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 금융산업은 빠르게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는 합리적인 규제체계를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IT조선과 만나 혁신을 마주한 금융권이 두려워하기 보다는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행시 24회에 합격한 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은행제도과장, 증권제도과장, 경제정책국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등 금융·경제정책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1년 국무총리실장에 이어 2013년 6월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한 뒤 KB금융지주를 제치고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성공했다. 2015년 2월 금융위원장을 맡으면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을 지휘하는 등 금융 전문가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통한 경험을 토대로 금소법 시행에 따른 현장 혼란, 빅테크와 전통 금융업 간 갈등, 금융권 전반에 대한 제언 등을 전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김동진 기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김동진 기자
‘혁신’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변화’를 수용해야 할 때

임종룡 전 위원장은 최근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빅테크·핀테크와 기존 금융권의 대립을 꼽았다. 대표적인 충돌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추진에 따른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다. 전금법 개정안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를 통해 비금융회사가 계좌 개설을 통해 결제나 이체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전통 금융권은 핀테크가 동일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만큼 금융업에 준하는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핀테크 업계는 은행 고유 업무인 예금·대출 업무를 하지 않아 동일 서비스라 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동일한 서비스·규제는 금융분야뿐 아니라 규제 행정 전반에 적용되는 원칙이다"라며 "기존 서비스가 계속 분화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끝없이 등장하는 금융 분야에서 동일성의 판단은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과거 신용카드 결제와 2007년 제도화된 통신과금 서비스를 들었다. 임 전 위원장은 "서비스 주체나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신용카드 결제와 휴대폰을 이용한 통신과금 서비스는 모두 결제대금을 당장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카드대금 또는 통신요금 결제일에 납부)는 점에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서비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러나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사와 달리 정보통신망법상 통신과금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별다른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규율체계가 다르고 규율대상이 되는 객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사례는 국가 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이나 호주는 2개월 이내 신용 제공을 2개월 이상인 경우와 달리 보고 규제하지 않지만, 우리는 기간과 상관없이 여신전문금융업법 등으로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완벽하게 동일한 서비스가 아닌 이상, 이처럼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여부에 대한 판단에는 정답이 없다. 금융서비스의 주체와 구조, 효과뿐만 아니라 관련 제도와 보호해야 하는 가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테크’ 전자금융업법의 틀 안에서 관리해야

임 전 위원장은 빅테크 사례는 전자금융업법 틀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간편결제, 송금 등 전자금융거래법상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업자)를 신설하고 있다"며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여수신 기능이 없는 계좌개설 서비스, 할부나 현금서비스가 불가능한 30만원 한도의 후불결제 서비스 역시 기존 은행이나 신용카드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100% 동일한 서비스는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는 정책당국의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라며 "정부도 많은 고민과 검토를 거쳐 기존 은행법이나 여전법의 테두리가 아닌 전금법 개정을 통한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 원칙을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저항의 구실로 삼으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 김동진 기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 김동진 기자
금융접근성과 금융소비자 보호 충돌…끊임없는 ‘현장 소통’으로 풀어가야

금융접근성과 금융소비자 보호 충돌 역시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3월 금소법 시행 후 두 달여가 흘렀지만, 금융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설명의무 강화로 인해 금융상품 가입에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임종룡 전 위원장은 "최근 증권사를 방문해 만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며 "금소법 이후 새로운 소비자보호장치가 운용되는 것에 따른 변화라고 생각한다. 금융고객은 더 많은 확인 사항을 전달받아야 하고 창구 직원은 이를 처리하며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인내가 필요한 시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간 금융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금융접근성이 중시되고 소비자 보호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측면이 있었지만, 금소법으로 두 가치 간 우선순위를 바꾸는 큰 계기가 마련됐다"며 "법안 시행 초기이므로, 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혼란은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 정책당국에서는 면밀하게 현장 점검을 통해 조율하면서 금융회사와 소비자 모두가 제도를 좀 더 편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소법은 우리 금융산업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라며 "금융소비자는 정확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를 통해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이 우리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 보호우선의 원칙’이 어떠한 영업전략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금융환경의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코로나19 이후 불가피하게 공급된 유동성은 시장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며 "금융회사는 어떻게 시장상황을 분석하고 무엇을 대응해야 할지를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마련해야 하며, 얼마나 신속히 움직이는지가 성과를 좌우할 시기라고 본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시계비행(時計飛行)을 해야 하는데 금융당국도 제도적, 정책적 대응을 신속하고 유연하게 함으로써 시장 불안정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