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의 행보가 매섭다. 추격에 나선 2위 삼성전자의 투자가 주춤한 사이 TSMC가 잇따라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며 격차를 벌린다.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위에 오르겠다는 삼성전자의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크다.

2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에 170억달러(19조3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지역별 인센티브 세부협상이 지지부진한 분위기다. 최근 착공에 들어간 평택캠퍼스 3라인(P3)에는 파운드리 설비를 얼마나 들여올지 미정이다.

2020년 6월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가운데) / 삼성전자
2020년 6월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가운데) / 삼성전자
반면 TSMC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 TSMC는 향후 3년간 1000억달러(113조원)를 투자한다. 120억달러(13조4000억원)가 투입되는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생산라인 착공도 최근 시작했다. 애리조나에는 짓는 6개 공장은 5나노 미만의 초미세공정을 도입한다. 이 공장을 준공하면 3나노 공정 팹 건설에도 돌입할 예정이다.

TSMC는 미국에 반도체 칩 패키징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만 침략이 현실화할 경우 대만 반도체에 의존하는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을 감안한 선택이다. 일본과도 손잡고 반도체 연구거점에 370억엔(37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도 나왔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좀처럼 1위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6%로 1위, 삼성전자는 18%로 2위다. TSMC의 점유율이 2년간 8.9%포인트 상승한 반면, 삼성전자는 1.1%포인트 하락했다. 승자독식 구조가 점차 뚜렷해진 모양새다.

양사의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TSMC는 1분기 매출 129억달러(14조6000억원), 영업이익 53억6000만달러(6조원)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삼성전자 1분기 실적 대비 4조원 이상 적지만, 영업이익은 두배 가까이 많다.

향후 연평균 파운드리 투자금액은 TSMC가 35조원, 삼성전자는 15조원쯤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3나노 미만 초미세공정 개발에서 양사의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점유율 격차 역시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고객사와 신뢰에서 TSMC 대비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삼성전자는 완제품(갤럭시)·칩설계(엑시노스)·양산(파운드리)에 모두 발을 들였다. 고객사와는 공급자이자 경쟁자이자 수요자가 되는 셈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주요 팹리스가 정보 유출 우려를 감안해 파운드리만 전념하는 TSMC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재 중인 상황도 삼성전자의 투자 발표 지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 부회장은 1월 국정농단 재판에서 법정구속돼 경영에 공식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에서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사업 연속성 및 고객사와 관계가 중요해 승자독식 법칙이 메모리보다 더 크게 적용되는 분야다"며 "삼성전자가 과감한 대규모 투자는 물론 신공정 개발과 양산 안정화 등 내실을 키워야만 압도적 투자를 지속하는 TSMC와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