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미 역사소설] 그림자 황후 2부 (7) 강화도 조약과 승려의 요지경

  • 손정미 작가
    입력 2021.06.25 23:00

    [그림자 황후]

    2부 (7) 강화도 조약과 승려의 요지경


    "세자는 내가 안겠네."
    "예 마마."
    왕비는 잠든 세자를 조심스레 안았다. 세자의 통통한 뺨에 입을 맞추니 달콤한 젖내가 감돌았다.
    왕비는 아이 넷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낳은 세자가 무엇보다 소중했다.
    조선의 종묘사직을 이을 세자였다.
    세자책봉을 위해 온 청나라 칙사는 기어이 세자의 얼굴을 보겠다며 버텼다.
    "세자가 너무 어리고 날씨가 차서…."
    "날씨는 그리 차지 않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왕이 불편한 심기를 보였지만 칙사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었다.
    칙사의 횡포는 왕비의 분심을 자극했다.
    더욱 분노한 것은 일본이었다. 조정은 세자책봉을 위해 칙사가 오는 국가적 비상 상황에, 일본까지 대포를 쏘아대며 강화도로 들이닥치자 정신이 없었다.

    일본은 강화도로 포함을 끌고 와, 모든 걸 날려버릴 듯 겁박했다.
    조선으로선 목구멍에 해당하는 강화가 뚫리면 한성이 위험했다.
    "이번에 두 나라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배를 끌고 곧장 경성으로 갈 것이오! 본국에는 조선의 무례를 참을 수 없다며 대부대가 출병을 기다리고 있소!"
    일본 전권대사 구로다는 회담장에 나온 접견 대관 신헌을 압박했다.
    부사 이노우에 가오루는 이토 히로부미가 지령을 내린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안을 쥐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갔다.

    이토 히로부미는 프랑스 고문인 부아소나드(Boissonade)와 조일수호조규 안을 깊숙이 모의했다.
    부아소나드는 조선에 운요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조약 체결을 강박하라고 충고했다. 특히 세 가지는 절대 양보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부산 외에 추가로 항구를 개항할 것, 조선 해역을 맘대로 항해할 권리, 운요호 포격에 대한 사과였다.
    1875년 9월 운요호는 부아소나드의 조규안이 완성되자 곧바로 출항해 사건을 일으켰다.
    1876년 2월 조선과 일본은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게 된다.

    4월 홍문관 응교 김기수는 일본 사행에 오르기 전 왕을 알현했다.
    왕은 조일수호조규를 맺은 뒤 일본의 강력한 방일 요청을 받고, 김기수를 수신사 정사로 정했다. 조선통신사가 끊긴 지 60여 년만으로, 옛 우호를 닦아 신의를 돈독히 한다는 의미로 ‘수신사(修信使)’라 이름 지었다.
    왕은 김기수에게 일본이 그동안 어찌 변했는지, 무엇을 세워 성공했는지 자세히 보고 오라 명했다.
    김기수는 중전의 밀서를 받고 잔뜩 긴장했다.
    ‘일본은 말이 엿처럼 달고 태도가 오래 아는 사이처럼 친근하지만 그 검은 속마음은 알 수가 없소. 조심하시오. 오늘의 실수에 내일의 보복이 있을 것이오. 이 밀서는 읽은 즉시 태워버리시오.’

    수신사는 조선통신사 때처럼 왜학 역관과 한어 역관, 화원·악공·기수·교자꾼·고수·나팔수를 포함해 70여 명이 꾸려졌다. 민태웅도 수행원의 한 사람으로 끼였다.
    김기수는 부산에서 해신제를 올린 뒤, 수신사를 태우러 온 일본 화륜선(증기선)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두 개의 돛 사이로 시커먼 굴뚝이 치솟았는데 상상치 못한 형상이었다. 아카마가세키(시모노세키)와 고베,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노우에 가오루가 수신사 일행을 맞았다. 김기수는 이노우에 얼굴에 난 칼자국이 맘에 들지 않았다. 독직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노우에는 운요호 사건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인정을 받아 부활한 상황이었다.
    "드디어 조선의 사신이 오셨으니 과거처럼 두 나라의 우호가 돈독해지리라 믿습니다."
    공부경(工部卿)이자 법제 장관인 이토 히로부미가 수신사 앞에 나타났다.
    서른여섯 살의 이토 히로부미는 몸가짐이 날랬는데 두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
    "나 역시 일본의 문명개화를 위해 서양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배웠습니다. 조선도 이번 기회에 많이 보고 배워가길 바랍니다."
    일본 관료들은 서양식 관복을 입고 나왔다. 수신사 일행은 그 모양이 꼴사나워 처음엔 눈을 바로 들지 못했다.
    ‘아랫도리가 민망하게 몸에 딱 붙었잖아. 아랫도리 위로 음낭이 튀어나와 만지지 않아도 알 수 있군!’
    이노우에가 김기수에게 은밀히 목소리를 낮췄다.
    "이왕 오셨으니 공장과 군대를 다 둘러보고, 다른 곳도 두루 유람하십시오."
    "송구하지만 전하께서 명하신 기일이 있어서 불가합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 말고 따로 조용히 만나고 싶은데요."
    "서로 공적으로 하지 못할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이노우에는 김기수의 거절에 인상을 찌푸렸다.
    환영 연회에는 빙즙을 오색 찬연한 얼음 가루로 만들어, 수신사의 눈과 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수신사는 굉음을 내며 시커먼 연기를 날리는 화륜차를 타고, 육군성의 군대 조련하는 모습과 해군성에서 대포 쏘는 모습을 참관했다. 공학료를 방문해서는 전선(電線) 가설 과정을 시찰하고 양학교육기관인 가이세이(開成)학교와 도쿄여자사범학교를 견학하고 귀국했다.


    김옥균은 박영효, 서광범과 나들이 겸 봉원사를 찾았다.
    김옥균은 유대치의 소개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유대치가 권해준 불서들을 탐독한 뒤 자신이 느낀 불교의 세계를 박영효에게 들려줬다. 10살 아래인 박영효는 달변인데다 학문이 높은 김옥균의 말들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승방을 다니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환재(박규수) 선생 말씀처럼 나라가 부강하고 힘이 있으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답답하오."
    김옥균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일본은 지금 어떤 나라가 됐습니까?"
    박영효가 김옥균과 서광범을 쳐다보며 물었다.
    "일본은-."
    이때 문이 열리고 승려 한 명이 조용히 들어왔다.
    작달막한 키에 넓적한 얼굴, 눈 색깔이 평범하지 않았다.
    "소승 잠시 실례하겠소이다."
    "누구인지…."
    서광범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계했다.
    "지나가다 말소리를 듣고 왔소이다. 잠시 이것 좀 보시겠소?"
    승려는 보자기를 끌러 뭔가를 꺼냈다.
    "여기에 눈을 바짝 대고 안을 한번 보시지요."
    김옥균이 말 대로 눈을 갖다 댔다. 컴컴한 작은 상자 같은 곳에 서양 마차와 서양인이 그려져 있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나자 상자 안에서 서양의 다른 풍광이 나타났다.
    "이게 뭔가!"
    김옥균이 놀라 외쳤다.
    "‘노조키카라쿠리’라 합니다. ‘요지경’이라고도 합죠. 그림이 요상하죠? 영국이라는 나라의 풍물이올시다."
    서광범과 박영효도 차례로 눈을 대보고 크게 놀랐다.
    세 사람의 의구심에 찬 눈길이 승려에게 꽂혔다.
    "소승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다는 일본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보고 들었습죠. 부산에서는 왜승(倭僧)을 사귀어 그쪽 이야기도 듣고 책도 얻었소이다. 이 책을 한번 보십쇼. 원하면 다른 것도 구해보겠소이다."

    김옥균은 봉원사에 있다 보니 강 상궁이 강하게 생각났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간절해졌다.
    ‘그 여인을 만나야 해! 내 사람으로 만들겠어!’
    김옥균의 눈앞에는 풍만한 몸매에 맵시 있게 차려입은 강 상궁이 솟아올랐다.


    (2부 8화는 2021년 7월 2일 23:00 공개합니다)


    그림자 황후 2부 (6) 감찰 상궁이 들이닥치다
    그림자 황후 2부 (5) 강 상궁의 마음을 사로잡다
    그림자 황후 2부 (4) 유대치를 방문하고 宮女를 만나다
    그림자 황후 2부 (3) 김옥균과 북촌 도련님
    그림자 황후 2부 (2) 사무라이의 메이지유신
    그림자 황후 2부 (1) 국선(國仙)의 후예

    그림자 황후 1부 (30) 아버지와 아들
    그림자 황후 1부 (29) 운현궁의 횃불
    그림자 황후 1부 (28) 배 띄워라
    그림자 황후 1부 (27) 섭정을 받는 청 황제
    그림자 황후 1부 (26) 조선을 떨게 한 다섯글자
    그림자 황후 1부 (25)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그림자 황후 1부 (24) 순원왕후의 유산
    그림자 황후 1부 (23) 화폭에 옥린을 담다
    그림자 황후 1부 (22) 하얀 치파오
    그림자 황후 1부 (21) 연경의 미녀를 보러 가다
    그림자 황후 1부 (20) 도련님과 홍매
    그림자 황후 1부 (19) 피 묻은 다홍저고리
    그림자 황후 1부 (18) 10년만의 만남
    그림자 황후 1부 (17)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16) 왕자 탄생의 의미
    그림자 황후 1부 (15) 수상한 그림책
    그림자 황후 1부 (14) 첫날 밤
    그림자 황후 1부 (13) 조선을 뒤흔든 혼례
    그림자 황후 1부 (12) 왕비 간택
    그림자 황후 1부 (11) 너울이 벗겨지다
    그림자 황후 1부 (10) 승은(承恩)을 입다
    그림자 황후 1부 (9) 궁녀 이씨
    그림자 황후 1부 (8) 열두 살 명복 왕위에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7) 동백꽃
    그림자 황후 1부 (6) 속치마를 벗고 먹을 갈다
    그림자 황후 1부 (5) 월창(月窓)
    그림자 황후 1부 (4) 소녀의 슬픔
    그림자 황후 1부 (3) 한성(漢城)
    그림자 황후 1부 (2) 왕후족
    그림자 황후 1부 (1) 세상을 갖고 싶은 소녀

    손정미 작가 소개

    ※손정미 작가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20여년간 조선일보 사회부·정치부·문화부를 현장 취재했다. 2012년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경주를 무대로 삼국통일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왕경(王京)’을 시작으로 고구려 소설 ‘광개토태왕(1·2)’,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공 서란’을 썼다. 주요 문화재를 역사적 배경에서 심층적으로 풀어 쓴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가 2020년 가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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