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산 ‘한정판’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확보하려는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뿐 아니라 D램 양산에도 EUV 미세공정 도입이 확대되면서 이 장비의 가치는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12일 EUV 공정을 적용한 10나노급 4세대(1a) 모바일 D램 양산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EUV 공정은 선폭이 나노(㎚·1㎚=10억분의 1m) 수준인 초미세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반도체 공정 중 가장 앞서 있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저전력·고효율 칩을 만들 수 있는데, 회로를 좁히면 칩 크기가 줄어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독점 공급한다. 수요 대비 공급이 충분치 않다. 대당 가격이 2000억원에 이르며 한대를 만드는 데 무려 20주 이상이 걸린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EUV장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다. 유안타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TSMC는 지난해 말 기준 EUV 장비 누적 보유 대수는 40대쯤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20대 미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10대·15대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EUV장비 1대를 확보했고 지난해와 올해 각각 1대씩 장비를 확보했다. TSMC는 올해에만 30대를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2월 ASML과 5년간 4조7549억원에 달하는 장비도입 계약을 맺었다. 대당 가격과 총액을 추산하면 SK하이닉스는 5년간 20대 이상의 EUV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7일 네덜란드와 정상회담을 앞두고 "네덜란드는 EUV 노광장비 등 반도체 장비 생산 강국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제조 강점을 접목시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등 상호 보완적 협력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힌 바 있다.
EUV 장비 수요 증가로 ASML은 매년 장비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ASML은 2018년 18대, 2019년 26대, 2020년 35대쯤 EUV 장비를 생산했고 올해 40대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도체 공룡들의 선구매가 쌓이고, D램 양산을 위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어 공급 부족이 심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에는 그야말로 한정판인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공정에 활용하던 첨단 EUV 기술이 D램으로까지 확대 적용됐다"며 "EUV 장비 확보전은 물론 EUV 공정을 적용한 D램 생산성 향상 경쟁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