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미 역사소설] 그림자 황후 2부 (10) 초승달에 찔리다

  • 손정미 작가
    입력 2021.07.16 23:00

    [그림자 황후]

    2부 (10) 초승달에 찔리다


    "요즘은 누구 사랑방에 모이느냐?"
    왕비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민영익에게 물었다.
    박규수가 타계했으니 그 사랑방에 모이던 무리의 동향을 물은 것이다.
    왕비의 친정 조카인 민영익은 얼굴이 작고 선이 섬세했다.
    왕비의 기대 속에 급제한 뒤 이조참의까지 단숨에 올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 중전마마. 김옥균과 금릉위(박영효), 서광범은 봉원사에 어울려 다닌다고 합니다. 김옥균은 유대치라는 한의에게 자주 드나들고, 소신의 사랑방에도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 집을 드나드는 여덟 명을 ‘8학사’라 하느냐?"
    "황공하옵니다 중전마마."
    민영익은 고모인 왕비가 벌써 8학사에 대해 알고 있자 꿈쩍 놀랐다.
    그만큼 왕비는 정보가 빨랐다.
    "네가 보기에 누가 인물이더냐?"
    "김옥균이 벌심이 있으나 역시 뛰어납니다. 어윤중도 글을 많이 읽고 사리판단이 빠릅니다."
    어윤중은 어려서 서당 훈장이던 박영효의 부친 박원양에게 배웠다. 그 인연으로 박영교 박영효 형제를 알았고, 역시 박원양 제자였던 김윤식을 통해 박규수도 알게 됐다.
    어윤중은 민영익이 관직에 나아가자 그 사랑방에 드나드는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구석에서 봉서 대필을 위해 고양이처럼 앉아있던 강 상궁의 귀에 ‘김옥균’이란 소리가 박혔다.
    ‘그이가 봉원사에 드나든다고?’

    왕은 서른 살인 어윤중을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낙점했다.
    일본과 조약을 맺고 갈 길이 바빠졌는데 흉년마저 들어 농민들의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호남이 흉년을 겪고 있다 하니 경은 성심을 다해 백성의 고통을 살피시오."
    왕은 어윤중을 불러 당부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소신 불민하오나 어찌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기골이 장대하고 퉁퉁한 체격의 어윤중은 머리를 조아렸다.
    얼굴이 크고 장부다워 관모가 머리에 꽉 끼어 보였다.
    어명을 받은 어윤중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어윤중이 전라도로 떠나기도 전에 한양에서부터 ‘용서해달라’ ‘잘 봐달라’는 청탁이 쏟아졌다.
    어윤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암행어사로 10개월간 고을을 훑으며 수령 48명에 대해 냉엄한 평가를 매겨 보고했다.

    무장현감 성대영은 그로 인하여 많은 백성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어 우도(右道)에서 최고입니다.
    전(前) 전주판관 권용규는 아전이 10만 냥을 사사로이 써버렸는데도 이를 발견하지 못해 파직하였습니다.
    전 고부군수 이수은은 공공의 재물을 사사로이 갖거나 재물을 빼돌린 것이 3만2000 냥이었습니다.
    영암군수 민창호는 잘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전 김제군수 윤병성은 관문에 ‘감히 사적인 일을 부탁하려는 자는 이 문을 들어오지 말라’는 글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어윤중은 억울한 사정을 밝혀내 바로잡으려 애썼고, 이에 감복한 자들이 공덕비를 세웠다.
    관리들의 강요로 세워지는 공덕비가 아니라 백성들이 자세한 내용을 담아 덕을 칭송했던 것이다.

    의정부 대신 중 일부는 어윤중의 일 처리가 분수를 넘어섰다며 파직을 주장했다.
    어윤중이 잡세 혁파, 환곡 폐지, 조운선 제도 개선 같은 파격적인 내용을 올리자 비난한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어윤중의 강직하면서 배짱 있는 일 처리에 매우 흡족했다.
    왕비는 어윤중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밤공기가 맑아 자수정 같은 바닷속을 거니는 듯했다.
    강 상궁은 두 다리가 공중에서 허우적거린다고 느꼈다.
    강 상궁이 봉원사로 밀서를 보내자 김옥균으로부터 친구의 별장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장옷을 깊이 덮어쓴 강 상궁은 몇 번이고 멈춰 섰다.
    ‘감찰 상궁에게 들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
    ‘내가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거지?’
    강 상궁은 어느새 별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별장의 정원에는 갖가지 꽃들로 화려했다.
    찔레꽃은 청순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홍자색 해당화가 스란치마를 입은 왕녀처럼 현란함을 뽐냈다.
    물에는 꽃을 피우기 위해 잔뜩 부풀어 오른 연꽃 봉오리가 터질 듯했다.
    계곡에서 우당탕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우렁찼다.

    "오랜만이오!"
    김옥균은 강 상궁을 보자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했다.
    강 상궁의 자색이 숨이 멎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예."
    강 상궁도 김옥균이 그리웠다.
    "벗에게 별장을 비워달라 했소. 우리 둘뿐이니 안심하시오."

    "여기 전에 말씀하신 걸 가져왔습니다."
    강 상궁은 궁체로 쓴 <소학>을 건네주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군!"
    김옥균은 강 상궁의 아름다우면서도 힘찬 필체를 보며 감탄했다.
    "내 강 상궁에게 긴히 할 말이 있소! 실은…."
    "예 무엇이온지요?"
    길고 짙은 속눈썹을 치켜뜬 강 상궁의 모습이 달 속 항아(姮娥) 같았다.
    투명한 피부에 석류 같은 입술. 톡 튀어나온 앞이마는 저돌적이었다.
    김옥균은 강 상궁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을 덥석 잡았다.
    "앗! 어찌 이러십니까!"
    "신필(神筆)을 보여주는 거룩한 손이요. 제발 잠시라도 잡게 해주오."

    "이러시면…."
    강 상궁이 손을 빼려 하자 김옥균이 절규하듯 안아버렸다.
    "나으리!"
    "쉿!"
    강 상궁의 장옷이 벗겨졌다.
    김옥균은 자신의 남성이 바지를 뚫을 듯 강직해지고, 강 상궁의 유두가 빳빳해지는 걸 느꼈다. 꽃을 피우기 위해 힘을 모으는 연봉(蓮峯) 같은 젖가슴이었다.
    김옥균이 강하게 끌어안자 여체가 축 늘어졌다.
    김옥균은 파랑새를 받들 듯 강 상궁을 안아 들었다.
    ‘아!’
    강 상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의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의 뾰족하고 단단한 끝이 자신의 몸속으로 맹렬히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2부 11화는 2021년 7월 23일 23:00 공개합니다)


    그림자 황후 2부 (9) 꽃 선물을 받고 울다
    그림자 황후 2부 (8) 사랑을 허락하다
    그림자 황후 2부 (7) 강화도 조약과 승려의 요지경
    그림자 황후 2부 (6) 감찰 상궁이 들이닥치다
    그림자 황후 2부 (5) 강 상궁의 마음을 사로잡다
    그림자 황후 2부 (4) 유대치를 방문하고 宮女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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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황후 1부 (3) 한성(漢城)
    그림자 황후 1부 (2) 왕후족
    그림자 황후 1부 (1) 세상을 갖고 싶은 소녀

    손정미 작가 소개

    ※손정미 작가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20여년간 조선일보 사회부·정치부·문화부를 현장 취재했다. 2012년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경주를 무대로 삼국통일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왕경(王京)’을 시작으로 고구려 소설 ‘광개토태왕(1·2)’,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공 서란’을 썼다. 주요 문화재를 역사적 배경에서 심층적으로 풀어 쓴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가 2020년 가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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