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이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기존 IP를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고, 엔터 관련 전문가를 영입한다. 일각에서는 신규 IP 개발 및 엔터 영역으로 새롭게 진입하는 경우도 나온다. 업계는 이런 움직임이 ‘불가역적’이라고 설명한다. 순수한 게임 제작, 배급 사업만으로는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 넥슨·스마일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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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게임사가 엔터프라이즈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은 게임 산업 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게임사가 갖고 있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할 가능성을 다른 산업에서 엿본 것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사의 엔터 사업 진출은 당연한 수순이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등 OTT 공룡의 게임사업 진출은 이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최근 넷플릭스는 마이크 베르두 페이스북 콘텐츠 부사장을 영입해, 게임 팀을 꾸리는데 본격 착수했다. 업계는 이제 게임이 게임사 만의 고유 영역이 아닌, 콘텐츠와 융합된 전방위적 영역이 됐다고 보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예를 들어 넥슨은 그동안 신규 IP 개발을 많이 해왔는데, ‘카트라이더’나 ‘바람의 나라’ 같은 기존 IP를 활용한 콘텐츠만 성공한 상황이다"라며 "게임을 개발하고 제작만해서는 사업을 확장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위 학회장은 이어 ‘K-POP’ 시장의 글로벌화를 사업 확장의 또 다른 이유로 들었다. 그는 "빅히트 2대주주인 넷마블을 보고 엔씨나 넥슨 등 다른 기업이 자극을 받은 것 같다"며 "넷마블이 투자한 BTS가 독자적으로 엄청난 IP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 해외 시장 공략에 앞서 영향을 받은 듯 하다"라고 말했다.

넥슨·스마일게이트 등 기존 게임 IP 활용 방안 모색

실제 넥슨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월트 디즈니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가 ‘닉 반 다이크’를 영입하면서 사업 확대에 나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넥슨필름&텔리비전’을 설립한다. 이를 통해 월트 디즈니처럼 기존 지적재산권(IP)으로 영화, 만화, 게임, 굿즈 등을 생산하는 종합 엔터 기업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엔터 분야 각종 사업에 뛰어드는 건 비단 넥슨 만의 행보가 아니다. 스마일게이트는 전 세계 이용자수 10억명을 지닌 ‘크로스파이어’ IP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방영한 크로스파이어 드라마는 조회수 18억뷰를 기록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크로스파이어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이사장은 "IP 명가로 나아가고 싶다"고 꾸준히 밝혔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활용해 웹툰,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제작한다. 지난달 26일에는 배우 마동석이 주연을 맡은 단편영화 ‘그라운드 제로’를 선보였다.

신규 IP 개발 및 신산업으로 눈 돌려

기존 게임 IP를 활용하는 게 아닌 새로운 IP를 개발하거나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움직임도 나온다. 이를 위해 일부 게임사는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추가 설립하고 신규 IP 개발에 착수했다.

펄어비스는 사업비 300억원을 투자해 내년 상반기 개관할 ‘펄어비스 아트센터’를 짓는다. 약 5000㎡(약 1500여평, 대지면적 500평)의 5층 건물로 국내 게임업계 아트센터 중 최대 규모로 예상된다.

스마일게이트는 ‘신과 함께’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와 지난 3월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기존 IP 활용 외에 신규 IP를 발굴하는 게 목표다.

엔씨소프트(엔씨·NC)는 K-POP 콘텐츠 활용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자회사 ‘클렙’을 설립해 올해 초 K-POP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를 출시했다. 가수와 팬이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가수별 자체 콘텐츠도 제작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IP만 활용해서는 사업 확장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게임의 경우 일본과 비교해 완성도가 높지 않아 신규 IP 개발은 필수인 만큼 기존 IP만 활용하는 보수적 태도를 고수한다면, 신산업과 대적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국내 게임산업의 미래는 없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