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제조사 간 ‘합종연횡’이 잇따른다.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원하는 완성차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미래에도 ‘슈퍼 을’로 남길 바라는 배터리 제조사 간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을 어느 진영에서 쥘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완성차·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배터리 업체들과 합작법인 설립에 적극 나선다. 고속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 대비 배터리 수급 여력이 달려서다. 원활한 수급 관리와 보호무역 등을 고려하면 현지에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전략이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짓고 있는 제1 배터리 공장 ‘얼티엄 셀즈’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짓고 있는 제1 배터리 공장 ‘얼티엄 셀즈’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GM과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출범했다.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으며 테네시주에 2조7000억원을 투입해 제2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동남아에도 배터리 생산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차와 1조원 이상을 공동 투자해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을 설립한다.

SK이노베이션과 포드는 5월 20일 6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삼성SDI는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미국에 합작법인 설립을 검토 중이다.

K배터리 3사가 미국 공장 설립에 적극 나선 배경은 지난해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른 관세정책이 변경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내 완성차업체들은 USMCA 협정에 따라 2025년 7월부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부품 비중을 75%까지 늘려야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관세 특혜를 받으려면 자동차 생산과정에 필요한 주요 소재부품 대부분을 북미 지역, 특히 미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 美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美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 SK이노베이션
완성차 기업의 배터리 독립선언은 유럽에서도 활발하다. 포르쉐는 수천만유로를 투입해 독일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업체인 커스텀셀스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6월 발표했다. 슈투트가르트 지역에 연간 100㎿, 1000대 분량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가진 공장을 세워 2024년쯤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볼보자동차그룹은 스웨덴 노스볼트와 합작해 50만대의 전기차에 사용할 수 있는 연간 5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유럽 내 건설될 합작 배터리공장은 2026년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중국 지리홀딩스가 인수한 볼보는 2030년까지 완전한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이미 일본 파나소닉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북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폭스바겐도 지분을 보유한 노스볼트과 함께 내재화를 추진해 유럽 전기차 밸류체인 통합 전략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일본 완성차 업계의 행보도 무섭다. 닛산은 2000억엔(2조원)을 투자해 최대 6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이 계획에는 배터리 규격을 표준화하기로 합의한 르노와 미쓰비시자동차도 참여한다.

도요타와 파나소닉의 합작 배터리 회사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솔루션’은 2022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50%로 낮춘 ‘반값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 BYD는 미국 포드와 중국 창안자동차의 합작사가 현지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중국 대표 배터리업체 CATL도 자국 전기차업체 니오와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했다.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그동안 압도적 기술과 양산능력으로 시장을 지배한 국내 배터리 업계에 명목상 악재로 보였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는 20년 넘게 축적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핵심 소재 투자를 지속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경우 현재의 K배터리 위상이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은 전기차 투자뿐 아니라 배터리 개발에도 막대한 비용을 써야하는 리스크가 따른다"며 "배터리 업계의 소재 자립에 가속이 붙으면서 오히려 배터리 부문에서 공급자 우위 시장 환경은 오랜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배터리 3사는 화재 위험 등 기존 대비 안정성을 개선한 동시에 성능을 높인 하이니켈 배터리 상용화로 배터리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하이니켈은 니켈 비중이 80% 이상 함유된 배터리 소재 양극재를 말한다. 양극재의 주요 원재료인 니켈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중요 역할을 한다.

삼성SDI는 양극 소재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의 니켈 비중을 궁극적으로 94%까지 높일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4원계로 안정성과 용량, 수명을 모두 잡는다. 니켈 함량이 89~90%에 달하고 코발트는 5% 이하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과 코발트, 망간 비중이 각각 90%, 5%, 5%인 NCM 배터리를 2022년부터 포드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배터리는 최대 700㎞까지 주행 가능하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