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 중 하나는 ‘메타버스’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생활이 일상이 되면서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세는 눈이 부실 정도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라는 협력체를 구축하면서 관련 생태계 활성화를 지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높은 열망과 관심, 투자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이 산업의 주도자적인 위치에 오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본격적인 메타버스 구현과 활용에 필수적인 하드웨어 분야에서 유독 취약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꼭 기존의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2D 기반 그래픽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엄연히 하나의 가상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게더타운’이 대표적인 예다.

본격적으로 3D 가상 세계를 활용하는 ‘로블록스’나 네이버의 ‘제페토’ 등도 별도의 전용 하드웨어가 필요 없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일반 디스플레이가 구성된 IT 디바이스만 있으면 누구나 참가하고 활동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이미 세계적인 영향력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마인크래프트’도 훌륭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더욱 발전되고 사실적인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VR이나 AR 같은 기존의 확장 현실(XR) 기술이 필수적이다. 화면을 거쳐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가상세계와 1인칭 관점에서 직접 가상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확장 현실 기술이 주는 몰입감과 현실감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재 메타버스가 ‘화면 속 가상세계’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전히 VR 및 AR 디바이스의 가격이 매우 비싸고, 그만큼 누구나 흔하게 접할 수 있을 만큼 보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큘러스를 인수한 페이스북이, PC 같은 외부 장치 없이 단독으로 VR을 이용할 수 있는 ‘오큘러스 퀘스트’를 기존 VR 디바이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출시하면서 ‘디바이스의 대중화’도 시간문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미래 메타버스 산업이 핵심이 될 하드웨어, 즉 XR 디바이스 분야에선 거의 손을 놓고 있다. 미국만 해도 원조 VR 기업 중 하나인 오큘러스와 이를 인수한 페이스북, ‘홀로렌즈’ 시리즈를 통해 AR 분야 최고의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마이크소프트 등이 두텁게 포진하고 있다.

대만의 대표 IT기업 중 한 곳인 HTC의 ‘바이브(VIVE)’는 오큘러스와 더불어 여전히 VR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 플랫폼 중 하나다. 중국 역시 초창기 조잡한 수준의 디바이스를 넘어, 업계 최초로 5K급 VR 디바이스를 상용화해 이제는 나름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저명도를 갖춘 파이맥스를 비롯, 수많은 VR/AR 디바이스 제조사가 있다.

그러나 나름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에는 제대로 된 VR/AR 하드웨어 제조사가 없는 상황이다. 가장 적극적이던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 손잡고 선보인 ‘기어VR’ 시리즈와 윈도MR 기반 디바이스인 ‘오디세이’ 시리즈를 잇달아 선보였지만, 2018년 ‘오디세이 플러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LG전자 역시 2016년 스마트폰 기반 ‘LG 360 VR’을 선보이고, 스팀 VR 기반 ‘LG VR(가칭)’도 시제품까지 개발했지만 결국 정식 출시하지 못했다.

이는 향후 메타버스의 중심이 본격적인 VR 및 AR로 넘어갈 때 의존해야 할 하드웨어 디바이스들이 모두 외산 제품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국내에서 뛰어난 메타버스 플랫폼을 개발하고, 획기적인 사업 모델과 아이템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전부 다 외산 제품이면 그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외 유수의 IT 기업들이 당장 수익성이 없고 대중화가 계속 지연되었음에도 VR/AR 디바이스와 관련 기술에 지속적인 투자와 제품 출시를 이어온 것은 결코 돈 낭비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현재 ‘메타버스’라 불리는 가상세계 기반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할 것을 내다본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였던 셈이다.

물론, 하드웨어가 없어도 잘 만든 플랫폼 하나면 메타버스 산업을 키울 수는 있다. 현재 2억명 이상의 글로벌 누적 가입자를 유치한 네이버의 ‘제페토’가 그 예다. 그래도 향후 메타버스 산업을 키우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하드웨어’가 필수이다. 그 주도권을 해외 기업들에 내줘야 하는 것은 뼈아프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