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적 게임 셧다운제(청소년보호법 제26조)를 폐지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지적이 끊이지 않던 강제적 셧다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게임시간 선택제(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가 도입된다.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존중하고 국가의 강제적 규제가 아니라 가정과 학교 내의 자율적 조율을 통해 건전한 게임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업계는 숙원 과제 중 하나가 해결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아직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록이다. 게임업계에 20년 넘게 발을 담근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질병코드’를 업계가 지닌 숙원 과제로 꼽았다. 이는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ICD)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시작된 이슈다. WHO는 내년 1월 개정안을 발효할 계획이다.

이에 국내 게임 업계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아직 정부는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관련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도입이 유력시 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는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꾸려 정당성 연구과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연구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과학적 근거 분석과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에 관한 내용이다. 협의체에 참석한 관계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질병코드를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게임 산업을 맡고 있는 문체부는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게임 업계가 좌불안석인 이유다.

특히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는 국내 게임이 많은 만큼 산업 활성화 정책을 펼치기도 바쁜데 속상하다", "그동안 셧다운제, 질병코드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키운 원인 중 하나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촉발한 WHO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당장 내년 1월 개정안을 발효한다고 발표해 놓고선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WHO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밖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안전하게 게임을 하자"는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play apart together) 캠페인을 지원했다. 코로나 확산 시기 게임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게임산업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WHO의 이런 움직임 때문인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에서 WHO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반대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한국게임학회가 일반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WHO 신뢰도 평균값(5점 만점)은 3.26에서 2.68로 현저히 떨어졌다. 반면 게임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 의견은 3.29에서 3.37로 증가했다. 학회 측은 설문조사를 근거로 게임을 향한 시민 인식은 좋아지고 WHO 신뢰도는 떨어진 만큼 국내 질병코드 도입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는 여론, 업계, 정치권 모두의 관심이 이뤄낸 쾌거다. WHO의 질병코드 지정이 반년도 채 안 남은 지금, 질병코드 도입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치권 등의 사회적 관심과 충분한 의견 교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한 마디 덧붙이면, 2019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게임이용장애를 국내에 도입하면 게임산업에서 일자리 3만4000여개가 감소하고 국내 연간 총생산액이 약 5조2000억원 줄어드는 등 산업 위축과 청년실업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