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미 역사소설] 그림자 황후 2부 (16) 언론을 누르고 임오군란을 이용하다

  • 손정미 작가
    입력 2021.08.27 23:00

    [그림자 황후]

    2부 (16) 언론을 누르고 임오군란을 이용하다

    1882년 7월 29일.
    한성에서 도망쳐 나온 일본 공사 하나부사는 인천에서 영국배 ‘플라잉 피시’의 도움으로 겨우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임오군란이 터진 지 6일 만이었다.
    하나부사는 외무성에 급히 임오군란을 타전했다.
    일본은 각의를 열어 조선을 맹비난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조슈 3걸’로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발언이 강경했다.
    조선이 즉시 사죄와 배상금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무력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도쿄니치니치신문>의 니시무라는 각의의 결정을 기다리며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의 비서를 은밀히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인은 조선에 대한 기사를 가장 궁금해했다.
    1876년 <도쿄니치니치신문>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문 호외’라는 걸 냈다. 호외를 낸 이유는 ‘일조수호조규(강화도조약)’ 타결 때문이었다. 호외는 날개 돋친 듯 팔려 이후 호외 유행을 일으켰다.
    드디어 비서가 바짝 긴장한 채 나타났다.
    "어찌 됐나?"
    "하나부사를 다시 조선에 보내 사죄와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기로 했네. 공식 발표까지 쓰지 말아줘.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조심해야 해!"
    당시 일본은 이노우에 가오루의 저열한 책략으로 들끓고 있었다.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의회개설과 정부의 탄압 저지를 외치며 자유당을 세우자 인기가 치솟았다.
    정권을 쥔 이토, 이노우에, 야마가타 같은 메이지 주역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 무렵 이토 히로부미는 헌법을 조사한다며 유럽에 가 있었지만 절친인 이노우에로부터 즉시 보고받고 있었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이타가키의 명성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토 쇼지로를 공략했다. 고토 쇼지로는 이타가키의 오랜 친구로, 이타가키를 설득해 헌법 조사를 위한 해외 시찰에 나서게 했다.
    이노우에 측은 육군 납품기한이 끝나는 미쓰이(三井) 측에 납품을 3년 연장해 주는 댓가로 이타가키의 외유 자금 2만 엔을 내라고 요구했다.
    미쓰이로선 2만 엔만 주면 그보다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쾌히 승낙했다.
    이타가키가 정권의 돈으로 외유를 떠난다고 알려지자 그의 명예는 떨어졌다.
    정권 실세의 비열한 모략도 함께 비난받았다.
    궁지에 몰린 메이지 정권 앞에 임오군란이라는 호재가 발생한 것이다.
    들끓는 여론을 조선으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니시무라 자네도 조심하게! 괜히 패가망신하지 말고!"
    니시무라는 비서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났다.
    언론을 억압하는 ‘신문지조례’가 공포되자 <도쿄아케보노신문>의 편집장 ​​​​스에히로 뎃초가 이를 비판하다 2개월 금고와 막대한 벌금형을 받았다. 스에히로는 정권의 독재를 계속 비판하다 결국 투옥되고 말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도쿄에서 신문사를 세울 경우 경시청을 통해 내무성에 신고하고, 발행인은 보증금으로 1천 엔이라는 막대한 돈을 내게 했다.
    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보도할 경우 피의자로 몰아 인쇄 원판을 몰수했다. ‘신문허가제’를 통해 반정부 보도를 규제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압력을 넣어 폐간시켰다.


    니시무라는 바깥으로 나와 찬 공기를 마셨다.
    이때 다시 비서가 누렇게 뜬 얼굴로 달려왔다.
    "제발 오늘 일은 한 자도 쓰지 말게! 이노우에가 알면 난 파리목숨이야.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먹여 살려야 한다구!"
    니시무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착잡했다.
    궐련을 꺼내 피워물었다.
    까딱하면 자신이 먼저 감옥에 끌려갈지 몰랐다.


    니시무라는 연기를 내뿜으며 후쿠자와 유키치를 떠올렸다.
    후쿠자와 같은 유력한 명망가가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지금처럼 움츠러들지는 않을 텐데.
    메이지 정권은 신문의 반정부 보도가 민권운동을 부추긴다고 보고, 1882년 영향력 있는 친정부 신문 <지지신보(時事新報)>를 만들도록 했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는 후쿠자와를 만나 친정부 신문 설립을 권하면서 "정부는 곧 의회를 개설해 민의를 반영할 것"이라며 은근히 명분을 던져주었다.
    후쿠자와는 민권운동 편이었지만 자신이 세운 게이오의숙에 들어가는 운영자금이 버거운 상태가 되자 정부 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메이지 실세들은 이타가키 같은 민권운동가는 매수하고, 후쿠자와 같은 여론 주도층은 지원을 통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메이지 정권은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제대로 막지 못하자 급기야 ‘보안조례’를 공포했다. 비밀결사와 집회는 금지하고 경찰관이 옥외집회 금지권을 가졌다.
    내란 음모자와 교사자는 황거(皇居·천황의 거처)나 행재소(천황이 외출할 때 사용하는 임시 처소)로부터 3리 밖으로 퇴거시킬 수 있었다.
    보안조례가 발동되자 도쿄에서 활동하던 핵심 운동가들은 일제히 검거되고, 570명에 가까운 반정부 인사에게는 즉시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퇴거 명령을 받은 자는 경찰관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1주일 내에 퇴거해야 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연행됐다.
    도쿄의 주요 역은 퇴거 명령을 받고 쫓겨나는 자들로 어수선했다.
    보안조례는 민권운동과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데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다.


    김윤식은 무릎 위에 놓은 손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주복(周馥)이 뭐라고 하는 건가.
    "저… 뭐라고 하셨습니까?"
    "조선에서 군란이 일어나 조정 대신들이 죽고 일본 영사관도 불탔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어 급히 뵙자고 했습니다. 혹시 아는 바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청국은 8월 1일 주일공사 여서창이 임오군란 발생을 긴급 타전하면서 알게 됐다.
    일본 정부가 여서창에게도 소식을 알렸던 것이다.
    청국 최고 실세인 이홍장의 막료인 천진 해관도(海關道) 주복은 김윤식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창백해지자 차를 권했다.
    청국은 예부에서 담당하던 조선과의 외교·통상 업무를 이홍장에게 일임하면서 천진 해관이 그 일을 맡고 있었다.
    김윤식은 왕명을 받고 유학생을 이끌고 천진에 와 있던 상황이었다.
    서구와 조약을 맺은 이후 관세를 비롯해 여러 문제를 청국과 의논하고 있었다.


    김윤식은 잔을 든 손이 떨려 차를 마실 수가 없었다.
    ‘아 주상은 어찌 되셨는가!’
    ‘김홍집과 민영익은 맞아 죽었겠구나!’
    ‘가족들은 살아 있을까?’
    마흔 살에 급제하고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김윤식이었다.
    박규수는 비난을 무릅쓰고 제자인 김윤식의 시권(試券·과거 답안지)을 뽑아 인재로 등용하면서 자신의 꿈이 이어지길 바랬다.
    그러나 부국강병의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2부 17화는 2021년 9월 3일 23:00 공개합니다)


    그림자 황후 2부 (15) 김옥균 후쿠자와를 찾아가다
    그림자 황후 2부 (14) 시신 없는 관 앞에서 울다
    그림자 황후 2부 (13) 욕망의 나르시시즘
    그림자 황후 2부 (12) 임오군란의 서막
    그림자 황후 2부 (11) 청룡(靑龍)이 나르샤
    그림자 황후 2부 (10) 초승달에 찔리다
    그림자 황후 2부 (9) 꽃 선물을 받고 울다
    그림자 황후 2부 (8) 사랑을 허락하다
    그림자 황후 2부 (7) 강화도 조약과 승려의 요지경
    그림자 황후 2부 (6) 감찰 상궁이 들이닥치다
    그림자 황후 2부 (5) 강 상궁의 마음을 사로잡다
    그림자 황후 2부 (4) 유대치를 방문하고 宮女를 만나다
    그림자 황후 2부 (3) 김옥균과 북촌 도련님
    그림자 황후 2부 (2) 사무라이의 메이지유신
    그림자 황후 2부 (1) 국선(國仙)의 후예

    그림자 황후 1부 (30) 아버지와 아들
    그림자 황후 1부 (29) 운현궁의 횃불
    그림자 황후 1부 (28) 배 띄워라
    그림자 황후 1부 (27) 섭정을 받는 청 황제
    그림자 황후 1부 (26) 조선을 떨게 한 다섯글자
    그림자 황후 1부 (25)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그림자 황후 1부 (24) 순원왕후의 유산
    그림자 황후 1부 (23) 화폭에 옥린을 담다
    그림자 황후 1부 (22) 하얀 치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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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황후 1부 (20) 도련님과 홍매
    그림자 황후 1부 (19) 피 묻은 다홍저고리
    그림자 황후 1부 (18) 10년만의 만남
    그림자 황후 1부 (17)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16) 왕자 탄생의 의미
    그림자 황후 1부 (15) 수상한 그림책
    그림자 황후 1부 (14) 첫날 밤
    그림자 황후 1부 (13) 조선을 뒤흔든 혼례
    그림자 황후 1부 (12) 왕비 간택
    그림자 황후 1부 (11) 너울이 벗겨지다
    그림자 황후 1부 (10) 승은(承恩)을 입다
    그림자 황후 1부 (9) 궁녀 이씨
    그림자 황후 1부 (8) 열두 살 명복 왕위에 오르다
    그림자 황후 1부 (7) 동백꽃
    그림자 황후 1부 (6) 속치마를 벗고 먹을 갈다
    그림자 황후 1부 (5) 월창(月窓)
    그림자 황후 1부 (4) 소녀의 슬픔
    그림자 황후 1부 (3) 한성(漢城)
    그림자 황후 1부 (2) 왕후족
    그림자 황후 1부 (1) 세상을 갖고 싶은 소녀

    손정미 작가 소개

    ※손정미 작가는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20여년간 조선일보 사회부·정치부·문화부를 현장 취재했다. 2012년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경주를 무대로 삼국통일 직전의 긴박했던 상황을 다룬 ’왕경(王京)’을 시작으로 고구려 소설 ‘광개토태왕(1·2)’,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공 서란’을 썼다. 주요 문화재를 역사적 배경에서 심층적으로 풀어 쓴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가 2020년 가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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