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시청료 인상? 뜬구름 잡기식 수신료 정상화 논쟁 그만

입력 2021.09.13 06:00

콘텐츠 공급업체(PP)의 어려움이 크다. IPTV, 케이블TV 등 플랫폼 업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가 수준이 낮은 탓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회사 경영 자체가 위태롭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해관계자들은 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에서 콘텐츠 대가와 관련한 열띤 토론을 벌인다. 9월 초에도 벌써 수차례 토론회가 열렸다.

PP 요구는 명확하다. 수익의 근간인 콘텐츠 납품 대가를 더 높이 책정해 달라는 것이다. 8일 홍익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온라인으로 열린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는 현행 PP의 투자수익률이 2배 늘어야 콘텐츠 시장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PP가 돈을 많이 벌면 이것이 양질의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지고, 플랫폼 역시 고퀄리티 영상을 보려는 가입자가 몰리며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다. 고액을 투자한 영상 콘텐츠의 퀄리티가 그렇지 못한 콘텐츠보다 우수하다. 고품질 콘텐츠는 시청자 확보에 유리하고, 플랫폼의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 가입자가 매달 지불하는 금액도 인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말이다. 플랫폼 기업이 지금처럼 1만원 내외의 가입자당 월매출(ARPU)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PP에 줄 수 있는 재원은 한정된다. PP 요구대로 콘텐츠 가격을 올려주려면 국민에게 부과하는 사용료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랫폼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 플랫폼이 사라지면 PP 역시 설 자리가 없다. 잘못하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외산 OTT가 득세하는 식으로 유료방송 시장 자체가 전면 재편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료방송 플랫폼 가입자에 대한 이용료는 올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연령대에 따라 경험은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있거나 인기 드라마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TV 안테나가 있는 옥상에 올라갔다. 화면이 잘 나오는 방향으로 안테나를 돌려 가야 했다. 지역 유선이 사업을 본격화 한 후 이런 장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 달에 2000~3000원만 내면 지상파 방송을 깨끗하게 볼 수 있었다. 이후 KBS와 EBS의 재원 중 하나인 TV 수신료는 1981년부터 40년째 2500원으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가격 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이 그만큼 큰 상황이다.

PP나 국회 등에서는 플랫폼 업체가 ARPU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방송 시청자가 지불하는 금액이 저렴한 것은 초창기 유료방송 때부터 지속된 일인데, 이것을 갑자기 인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표적인 뉴미디어라는 평가를 받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도 최근 가격 경쟁을 펼친다. 콧대가 높았던 업체들이지만, 가입자 확보를 위해 플랫폼 이용료를 인하하며 상대 업체를 견제한다.

유료방송과 지상파 분야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가격 현실화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해법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시청료 현실화 논의는 사실상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셈이다.

그나마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뉴미디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 출시다. 토종 기업이 넷플릭스처럼 실시간 방송 채널이 없는 VOD 기반 신규 플랫폼을 만들 수 있고, 콘텐츠 시장 선순환을 위한 새로운 가격 정책도 만들 수 있다. 다만, 글로벌 공룡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채널 경매를 통한 수익 확보다. 현재 정부는 SBS 5번, KBS 7번, MBC 11번, EBS 13번 등 채널 편성을 강요한다. 기존 입장 대신 플랫폼 스스로 채널을 배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최근 홈쇼핑 업체들이 수백억원을 쓰며 채널 ‘0번’ 등 좋은 채널을 가져가려고 경쟁했다. 유료방송 황금채널을 경매로 판매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 중 일부를 펀딩 등 방법으로 PP 업계에 재투자하는 식은 어떨까. PP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참신한 방법 아닐까.

LG유플러스와 CJ ENM 간 대가 관련 논쟁으로 해당 채널이 검은색으로 채워지는 이른바 ‘블랙아웃’ 상황은 더이상 발생해서는 안된다. 시청자를 볼모로 삼는 식은 구태다. 정부가 개입해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기업간에 합의가 안되면 채널에서 빠지면 그만이다. 이걸 두고 왜 빼니 마니 하는 간섭은 오히려 방송 생태계를 망칠 뿐이다.

방송 업계가 선순환 구조로 가려면 정부의 간섭이 없는 기업간 자율 경쟁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수신료 정상화’ 같은 뜬구름 잡기식 논쟁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이다.

이진 IT조선 디지털산업부장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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