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붐이 국내 시장을 휩쓴 지 4년 가까이 지났다. 규제 공포로 300만원 초반대로 무너진 비트코인은 전고점을 뚫고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시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혁신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각국의 대처도 제각각이다. 변화를 좇거나 대응하거나 주시하거나 파악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막거나 강한 규제를 내리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는 놔버린 경우다. 이 가운데 국회는 관련 법안을 계속 내놓고 있어 고무적으로 보인다. 입법부가 변화를 감지하고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이에 IT조선은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만나 법안 발의배경을 비롯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정무위원회)이 여당을 상대로 가상자산 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 시행으로 대규모 폐업과 투자자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민주당의 가상자산 TF가 별다른 활동 없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IT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윤창현 의원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IT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윤창현 의원실
윤창현 의원은 최근 IT조선과 만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나아가면 뒤에서 쫓아가는 등 정부에 눌려 있는 모습이다"라며 "가상자산 TF 활동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여당은 야당이 하는 데 가만히 있자니 불편하고, 특위는 만들어 놨는데 무엇을 할까 고민만 하고 있다"며 "결국 정부의 기조를 홍보하고 뒷받침해주는 모양새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 단추 잘못 꿴 특금법, 두 가지 문제 개선해야"

국회와 업계가 지적하는 특금법의 결함은 크게 두 가지다. 가상자산 거래소 핵심 요건인 실명계좌 발급 기준 부재, 그리고 유예기간 이후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심사 불능에 따른 폐업 가능성이다. 그동안 은행과 업계가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위험평가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는 ‘은행의 사적 계약 영역’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현재 은행으로부터 확인서를 받은 중소거래소는 전무한 실정이다. 기존에 계좌를 발급받은 빅4를 제외하면 유예기한 이후 원화마켓을 닫아야 서비스 유지가 가능하다. 중소사업자 대부분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옥석가리기다. 산업 육성을 위한 주요 참여자로 활동할 수 있는 사업자들이 제대로 된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폐업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커졌다.

두 달 이상 서비스를 운영한 사업자를 제외하면 ISMS 심사가 막혀 신규 진입도 어려워진다. 반면 정부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위험과 기획 해킹·먹튀 등 범죄 발생 예방에 주력, 대규모 폐업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와 업계에서 특금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창현 의원은 "정부가 설계를 잘못한 탓에 많은 사업자가 사법부에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라며 "설계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든 대충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 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진이 클 수밖에 없다"며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과정은 제대로 된 행정이 아닌 만큼 공정성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는 모두 특금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분위기다.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와 육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먼저 문제 해결에 나섰다.

윤창현 의원은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을 돕기 위한 ‘가상자산거래 전문은행’을 설립하고 특금법 전면 재검토를 위해 신고를 6개월 연장하는 내용의 특금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당하게 탈락하고 공정하게 합격하는’ 법을 만들자는 취지다.

반면 여당은 김병욱 의원을 주축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하면서 특금법 유예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특금법 신고가 유예되려면 24일 전에 법안이 정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 한 이후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윤창현 의원은 "가상자산 정책에 오히려 야당이 전향적이고 여당은 수구적이다"라며 "여당은 ‘박상기의 난’에서 보여준 시각을 뒤집지 못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재 정무위원회 위원은 총 24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14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국민의힘 7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 무소속 1명이다. 위원회는 재적위원 오분의 일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여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정무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현재 특금법 유예 개정안은 정무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윤창현 의원은 "정부가 가상자산 정책과 관련해 첫 단추를 잘 못뀄다"며 "방치한 상태에서 시장이 커지니 제도권으로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의 자원과 노력을 잘 이끌었다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문제가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인다. 사업자들이 스스로 문 닫고 포기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어 아쉽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IT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윤창현 의원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IT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윤창현 의원실
다음은 윤창현 의원과의 일문일답.

―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시장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금융을 전공했다. 비트코인은 따져보면 태생이 화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공통분모가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그룹이 중앙집권적 금융 화폐 체제를 무너뜨리고 인터넷 상에서 완벽하게 분산화된 형태의 화폐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다. 무정부주의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면 네티즌이 발행한 화폐를 국가 통합 화폐로 사용하는 이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이상향을 담은 발명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트코인의 화폐 기능은 도태됐다. 자산 기능이 커졌다. 결국 사토시 나카모노의 이상은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이상이 교정되고 진화하면서 새로운 것을 계속 탄생시키고 있다. 가상자산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금융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가상자산은 중앙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다수의 네트워크와 대중의 능력으로 분산하는 기술이다. 크게 보면 금융시스템의 무정부주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가상자산은 기존 화폐와 금융제도에 도전하고 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심오한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금융을 한 사람이 가상자산 특위를 맡게된 배경은 가상자산에 그러한 요소가 내제돼 있기 때문이다."

― 가상자산특위는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계획인지?

"시장 지원과 육성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메타버스를 보면 우리가 생각치 못한 기가막힌 기술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선도하지 못하고 뒤쫓아 가면 주저 앉을 수 있다. 위험요인도 있지만 사업자가 두려움없이 최대한 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규제와 감독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에 대한 의견은?

"고승범 위원장이 금융연구원장 시절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자주 만났다. 합리적이고 좋은 분이라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전 페이스북에 고승범 위원장에게 환영 메시지도 올렸다. 하지만 고승범 위원장은 안정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전임자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혁신적인 시도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금융위원장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과격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싫을 수도 있고 남은 예상 임기가 짧아 일면 이해는 간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금융위원장으로서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상자산 분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본인도 고민할 것이다.

이같은 이야기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도 했다. 막상 야당 의원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가상자산과 관련해 성공적인 정책을 개발하라고 말하는 것은 여당의원이 해야 할 얘기 아닌가 싶다."

― 여당의 가상자산 정책 기조, 어떻게 보나?

"민주당은 정부에 눌려 있다. 정부가 나가면 뒤에서 쫓아가는 모습이다. 가상자산 특위 활동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야당이 하는 데 가만히 있자니 불편하고, 특위는 만들어 놨는데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기조를 홍보하고 뒷받침해주는 모양새로 가고 있다. 가상자산 정책에 대해 오히려 야당이 전향적이고 여당은 수구적이다. 여당은 ‘박상기의 난’에서 보여준 시각을 뒤집지 못하고 있다."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가상자산이 화폐도 아니고 자산도 아니라는 문재인 정부의 말을 뒤집으면 정책 베이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특금법 유예가 어려워졌다.

"많은 사업자가 사법부에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정부가 설계를 잘못한 탓이다. 설계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든 대충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 가려고 한다. 여진이 클 것이다.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과정은 제대로 된 행정이 아니다. 공정성이 완전히 상실됐다."

― 고승범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금융위원회와 업비트의 관계를 의심했다.

"업비트 독점은 자연스럽게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가고 있다. 업비트가 신고접수를 한 시간은 금요일 저녁 8시 30분, 황금시간대다. 이를 ‘올빼미 공시’라고 한다. 증권시장에서 발표하기 곤란한 내용은 금요일 밤에 한다. 큰 이슈라도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을 지나면 힘이 빠지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이 8월 20일 가상자산 거래소 한 두 곳이 신고접수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발언을 하자 케이뱅크가 업비트에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했다. 이날 저녁 업비트가 신고접수를 마쳤다.)

업비트 신고접수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뒤에서 조정하고 관리하면서 은행의 독립적 의사결정으로 포장하고 있다. 투명성 보장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니 불필요한 음모론이 나온다."

― 업비트의 독점을 견제할 방안이 있을까?

"독점 자체가 형성됐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점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면 그에 따른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다만 간접적인 독점 피해가 발생하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혁신과 진보를 주도할 수 있는 세력과 주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 특금법 개정안을 통해 전문은행 도입을 주장했다.

"신한은행, 농협, 케이뱅크가 이미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했으니 이들을 전문은행으로 지정하고 인센티브를 주자는 게 골자다. 준공공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금 정부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은행도 적극 나서지 못한다.

정부가 가상자산 정책과 관련해 첫 단추를 잘못뀄다. 방치한 상태에서 시장이 커지니 제도권으로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신기술의 자원과 노력을 잘 이끌었다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텐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문제가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인다. 사업자들이 스스로 문 닫고 포기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어 아쉽고 답답하다."

― 앞으로 계획은?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육성 정책을 개발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결제 시 원화를 사용하는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케이컬처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에서 디지털 원화를 발행하면 전자지갑이나 핸드폰에서 거래할 수 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케이컬처 콘텐츠를 거래할 때 원화를 쓰게 하면 기축통화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디지털 화폐를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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