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가 이전삼기에 실패했다.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 상 신고 접수 마지막날까지 전북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이하 실명계좌) 발급을 두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부결됐다. 고팍스는 코인 마켓 사업자로 접수한 후 다른 은행과 실명계좌 발급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다된 실명계좌 발급, 막판에 ‘부결’...고팍스 "은행 내부 사정으로 짐작"

24일 고팍스는 오후 4시 원화마켓을 종료하고 비트코인(BTC) 마켓을 오픈했다. 이날 JB금융 자회사인 전북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이 부결됐다는 통지를 받은 데 따른 조치다.

고팍스는 중소거래소 중 실명계좌 발급이 가장 유력한 곳으로 꼽혔다. 실제 지난 16일 전북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으며 마무리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확인서에는 고팍스가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심사를 모두 통과한 것으로 명시됐다.

고팍스는 전북은행 준법감시부로부터 자금세탁방지(AML/CFT) 위험 평가 수행을 통과했다. 비대면사업부로부터는 ▲고객 예치금 구분·관리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금융관련 법률 위반 형사처벌 및 신고말소 5년 미경과 여부 ▲고객별 거래내역 분리·관리 등을 모두 확인받았다.


다만 확인서에 직인이 찍히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전북은행이 확인서를 발급하겠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전달한 것이다. 은행 심사를 모두 통과했지만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팍스는 전북은행이 24일까지 직인이 찍힌 확인서를 발급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가지고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사업자로 신고할 계획이었다. 고팍스가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17일 원화마켓 종료를 공지하지 않은 이유다.

고팍스는 전북은행이 내부 사정으로 실명계좌 발급 부결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북은행이 발급 거부 사유를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업계의 우려가 있지만 고팍스는 이같은 판단을 극도로 경계하는 입장이다.

신한은행 부산은행에 이어 세번째 고배...발급 거절 사유 ‘오리무중’

고팍스는 앞서 시중 은행들과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논의해 왔다. 하지만 긍정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해왔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시선이 많다. 이번만 벌써 세 번째다. 설립과 동시에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고강도 규제를 내놓은 영향이 크다. 일찌감치 은행으로부터 가상계좌를 발급받아 원화 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와 명운을 달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팍스는 2017년 11월에 설립됐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옥죄기 시작한 건 다음 달인 12월부터다. 정부는 가상자산 규제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은행의 이용자 본인 확인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미성년자와 외국인의 코인 거래를 금지키로 했다. 금융기관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투자하는 것도 막았다. 2018년 1월 이같은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가상자산 거래소 폐쇄 발언이 이를 잘 나타낸다.

투자사인 신한은행과 가상계좌 발급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던 고팍스는 직격타를 맞았다.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실명계좌 신규발급을 중단했는데 여기에 신한은행이 동참한 것. 고팍스는 당시 신한은행의 내부 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다. 신한은행은 고팍스 운영사인 스트리미 설립 당시 5억원을 투자해 지분 6%를 확보한 주주사였다.

신한은행과 협상이 결렬 된 이후 고팍스는 실명계좌 발급에 주력, 여러 은행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말에는 BNK부산은행의 실사를 마치며 절차가 꽤 진행됐다. 양사가 언론을 통해 긍정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실명계좌가 발급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막판에 무산됐다. 이번에도 거부 사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고팍스는 또 다른 제휴사를 찾아 나섰고 전북은행의 실사와 심사를 거쳐 확인서까지 받았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높은 기술력으로 보안 강화...연구개발 투자 지속

고팍스는 높은 보안 안정성으로 규제 리스크 우려가 적은 거래소로 평가받았다. 고팍스의 운영사는 2015년 7월 설립된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업체로 출발한 스트리미다.

스트리미의 첫 서비스는 해외송금 플랫폼인 스트림와이어(StreamWire)로 국내외에서 높은 기술력로 이름을 알렸다. 이는 대규모 투자로 이어졌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아이씨비(ICB), 신한데이터시스템, 신한은행, 펜부시캐피탈(Fenbushi Capital), 디지털커런시그룹(DCG) 등이 투자 행렬에 동참했다.

투자금은 지속적인 연구 개발(R&D)에 투입되면서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 스트리미는 거래 매칭 시스템(OMS), 본인확인(KYC)과 자금세탁방지(AML) 모듈, 암호화폐 예치(DASK), 블록체인 노드 매니지먼트 등을 직접 개발했다.

스트리미는 이같은 기술력을 활용,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만든다는 목표로 고팍스를 설립했다. 고팍스가 해킹 이력이 없는 것도 보안을 최우선에 둔 결과다. 업계 최초로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설립 후 3년 연속 적자...수수료 수익 저하에 또 기약없는 보릿고개

시스템 투자가 쉬운 결정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팍스는 비트코인 폭락 등 시장이 침체된 와중에도 고급 인재 채용과 시스템 투자 확대에 자금을 쏟으면서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팍스는 2018년 영업적자 103억원, 순손실 129억원을 낸 데 이어 2019년 적자 78억원, 순손실 73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말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고 가상자산 거래량이 늘면서 적자 폭이 크게 줄었다. 매출은 82억원으로 매출이 전년 36억원 대비 127% 상승하고 영업적자는 7억원으로 감소했다. 순이익은 12억원으로 손실을 벗어났다.

고팍스가 원화마켓을 닫으면서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지난 22일 강민국 국민의힘(정무위원회)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팍스 가입자는 56만608명으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총 회원수 1479만2925명(중복 포함) 중 3.8%에 달한다. ISMS를 보유하고 인지도가 있는 가상자산 거래소 22곳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고팍스의 투자자 예치금은 7235억원으로 총 61조7311억원(코인 포함)의 1.2%에 해당한다. 고팍스의 원화마켓에는 총 72개의 코인이 상장돼있다. 고팍스는 24일 오후 4시에 이들 코인을 모두 비트코인 마켓으로 이동시켰다.

고팍스 관계자는 "우선 원화마켓에 있는 코인을 안전하게 비트코인 마켓으로 이동시키는 게 우선"이라며 "이후 다른 은행과 논의를 진행해 원화마켓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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