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가에서 빅테크 지배력 확장 견제하기 위한 바람이 거센 가운데 한국 경쟁법 학계가 독일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 경쟁당국은 세계 최초로 빅테크의 자기사업우대행위(self-preferencing)를 시장지배력남용행위로 규정한 데 따른 것으로 그 여파를 살펴보고 국내 시장 적용 여부를 판가름 하기 위함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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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쟁당국 시장획정 필요성 제거…국내 공정위도 시장획정 중요성 축소 중

12일 경쟁법 학계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 최초로 현행법에 빅테크의 지배력 전이를 견제하기 위한 관련법을 실행하고 있다. 1월 발의한 경쟁제한방지법 10차 개정안을 통해서다. 여기에는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규정으로 자기사업우대 행위를 포함했다. 독일 경쟁당국은 이를 통해 해당 행위 적발 시 이를 금지시킬 수 있게 됐다.

이는 빅테크 기업의 자기사업우대 행위가 시장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독일은 플랫폼 기업의 지배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문제의식을 가장 처음으로 입법안에 넣었다. 자기사업우대행위는 핵심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상품과 서비스를 경쟁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는) 경쟁자보다 유리하게 취급하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4100만명이 이용하는 검색 포털을 가진 네이버가 자사의 관련 사업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는 행위나 카카오모빌리티의 자사 가맹 택시에 ‘배차 몰아주기' 의혹 등이 ‘자기사업우대행위'에 속할 수 있다.

독일은 우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판단에 있어 경쟁당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시장 획정의 필요성'을 제거했다. 선제적으로 경쟁당국의 시장 획정 의무를 제거하고 ‘시장 간 경쟁에서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업자'라는 새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특정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규제하려면, 사전에 시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정하는 시장획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빅테크가 검색, SNS 서비스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에 진출해 운영하면서 정확한 관련 시장이 획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난설헌 연세대학교 교수는 "이는 한국의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와 비슷한 면이 있다"며 "경쟁당국이 지정 요건을 제시하고 그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단한다는 내용으로의 전환을 꾀했다"고 설명했다. 획정을 잘못해 경쟁당국 규제가 법원에 의해 ‘취소'될 위험성 자체를 줄인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독일이 이같은 선제적 조치를 입법화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자국에 빅테크 기업이 거의 없는 특수한 환경 떄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법 전문가는 "EU논의보다도 앞서 독일이 이같은 조치를 먼저 입법화까지 하고 실행하는 건, 자국 토종 빅테크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네이버, 구글 등 토종 빅테크가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 "시장 획정, 더 넓게 해석해야"

한국 공정위도 네이버와 소송에서 ‘시장 획정'을 잘못해 패소한 경험이 있다. 2008년 공정위는 네이버가 동영상 콘텐츠 업체 판도라 TV와 계약을 맺으면서 판도라TV에 개별광고를 넣지 못하도록 한 행위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2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2014년 대법원은 문제가 된 행위가 네이버의 ‘동영상 중개 과정'에서 이뤄졌다며, ‘인터넷 포털 서비스'라는 공정위의 시장 획정은 부당하다고 봤다. 당시 네이버는 인터넷 포털 시장에서는 점유율 50%를 훌쩍 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였지만, 동영상 중개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낮았다. 만약 개정된 독일의 경쟁제한방지법의 기준으로 보면, 공정위 패소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

국내 공정위에서도 시장 획정'을 훨씬 더 넓게 해석해 시장지배적 지위 판단을 보다 쉽게 하려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아직 획정 절차를 생략하는 등 획정 자체의 중요성을 완전히 떨어뜨리는식의 변화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국내 공정위는 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획정은 필요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획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완화할 방침이다"라며 "공정위가 획정한 시장에서 경쟁제한성 등 문제를 살펴보고 추가적으로 다른 시장의 영향도 추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촉진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