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에 스마트홈 보안 발목...망 분리 개정안 유명무실?

입력 2021.10.13 06:00

정부는 아파트 내 보안 강화를 위해 스마트홈 망 분리를 추진하지만, 월패드 제조업계의 반발로 유명무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월패드는 집안 내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연동·제어하는 홈네트워크의 허브다. 한 가구의 월패드가 해킹 당하면 전 세대 보안이 뚫린다. 안전을 위한 망 분리가 필요하다.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설치 및 기술기준’ 개정을 위한 기술적 검토에 들어간다. 과기정통부는 월패드 망 분리 내용을 담으려 했지만, 망 분리 의무화를 둘러싼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자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홈네트워크 이미지 /픽사베이
월패드 제조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스마트홈산업협회 측은 월패드 망 분리 의무화를 반대한다. 월패드 내 보안 모듈을 추가 장착해 보안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설치·유지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 특정 네트워크 보안업체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건설업계는 기축 아파트 적용 문제 등으로 사안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보안은 크게 시스템 보안, 경계보안, 네트워크 보안으로 나뉜다. 월패드 제조업자는 단말보안과 경계보안은 강화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 보안은 수행할 수 없다. 망 분리 의무화 시 전문업체에 용역을 주거나 제휴를 맺는 것이 필수다.

국내에서 망 분리 제품을 보유한 네트워크 보안 업체는 아라드네트웍, 아토리서치, 노르마 등이 있다.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다 보니 업체가 5곳 안팎에 그친다. 하지만 해당 고시가 개정되면 시장에 합류할 업체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네트워크 보안업계는 정부의 재검토 선언에 당혹스러워한다. 3년 넘게 끌어온 문제가 내년으로 또 지연될 상황에 놓였다. 만약 월패드 제조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세대 간 망 분리’가 아닌 ‘세대 간 보안강화’라는 문구로 개정될 시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 될 수 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이미 2018년부터 수차례 전문가 회의를 했고, 2020년 돈까지 들여 KAIT에 정책연구과제를 맡겨 ‘망 분리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얻었는데도 또 기술적인 검토를 하는 것은 고의로 시간을 끄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과기정통부 담당자들은 몇달 새 계속 바뀌고, 월패드 제조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망 분리(개정)가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니, 업계와 정부의 유착을 의심하는 말들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망 분리는 한 업체만 가능할 정도로 독점적인 기술이 아닌 데다 다른 기업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는 시장이다"며 "월패드 내 보안기능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으면 해킹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피해가 전체로 퍼지는 것은 똑같다"고 지적했다.

망 분리가 데이터 활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잘못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홈네트워크 망 분리를 하더라도 빅데이터는 서버에 저장되므로 데이터 활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보안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그는 "과거 스마트홈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 봐주기 식 정책을 펼친 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고, 망 분리 필요성은 5년 전부터 제기됐는데 월패드 제조업체들이 세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미국에서도 디바이스 보안인증 관련 규제를 만드는 등 대세는 홈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하는 방향인데 일부 업체들의 수익이 줄어든다고 해서 정부가 고시를 개정하지 않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세대 간 망 분리 기술 방법을 명시하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방법을 각 업체가 찾아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업체만 수혜를 입는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며 "냉장고, TV 등 한 가정의 특정 디바이스가 해킹당해 다른 세대로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월패드 자체 보안기능 강화만으로는 해킹 위협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을 받은 만큼 서둘러 전문가와 업계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주호영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국민의힘)은 문장 몇 개면 되는 고시 문안을 3년이 넘도록 합의하지 못하는 것에 질책했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망분리 비용이나 유지관리 책임이 과다하다’는 산업체 이견이 있어서 좀 더 협의를 진행해 연말까지 개정안을 확정하겠다고 답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KAIT 연구용역 결과 이후 (월패드 제조업계서) 새로운 의견을 내놨고, 양 측의 의견이 워낙 다르다 보니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다른 대안이 가능한지 여부도 검토할 것이며, 만약 망 분리가 유일한 해답이라면 월패드 제조업계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연말까지 시간이 빠듯하긴 하지만 개정안 마련을 위해 서두르겠다"며 "연구용역은 추가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지만, 토론회는 열 예정이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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