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 제도 정비하는 美·日…한국도 군불때기

입력 2021.10.14 06:00 | 수정 2021.10.14 17:36

일찌감치 증권형 토큰 공개(Security Token Offerring)를 제도권으로 편입한 미국과 일본이 규제 정비에 나섰다. 아울러 투자자 보호를 계기로 마련한 제도는 산업 육성의 기반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반면 국내는 이제 막 검토에 들어갔다.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한다는 면에서 시장 기대도 높다.

STO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토큰형태의 디지털 증권이다. 소유권자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토큰화를 통해 유동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거래 비용이 낮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이점도 있다.

美, 중앙화 증권형 투자계약에 증권법 적용…명확해진 불법경계, 투자자보호불확실성↓

미국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STO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명확히했다. 이 가운데 STO를 기반으로 자금조달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이 육성과 규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평가다.

미국은 가상자산 공개(ICO)를 통해 발생되는 가상자산이 증권법상 투자계약에 해당할 경우 1933년에 제정된 연방증권법에 근거해 규제하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공동의 사업에 금전을 투자하고 ▲관리자의 노력이 투자의 성패를 좌우하며 ▲이에 따른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 투자계약으로 본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증권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예다. 2018년 윌리엄 힌만(William Hinman) 기업금융국 국장은 "네트워크가 탈중앙화돼 있어 제3자의 노력으로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증권법상 투자계약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투자계약에 해당할 경우 증권형 토큰 발행에 따른 등록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아울러 증권법상 공시의무, 불공정거래금지, 업자규제 등이 적용된다. SEC는 2013년 3분기부터 2020년 4분기까지 증권법을 이행하지 않은 총 75건의 가상자산 거래 행위에 제재조치를 내렸다. SEC가 XRP를 증권에 해당한다며 리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초, SEC는 이른바 ‘SEC 투자계약 가이드’를 발표하면서 규제 정비에 나섰다. 기존에는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투자계약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SEC는 업계의 질의와 답변을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자본시장의 신뢰성과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규제 정비 후 신생벤처 STO로 자금조달 허용…JOBS법 적용해 절차 간소화

미국은 신생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STO를 승인하면서 육성책을 폈다. SEC는 같은 해 7월 증권법이 아닌 JOBS법의 A+ 규정을 근거로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인 블록스택(Blockstack)의 STO를 정식으로 승인했다.

JOBS법은 오바마 행정부가 2012년 만든 법으로 신생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IPO절차와 규제를 대폭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생기업은 기부, 후원, 대출, 지분투자 등 네 가지 중 하나의 유형으로 12개월 동안 최대 50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블록스택은 SEC의 공식 등록 절차를 거쳐 사용자 토큰 형태의 STO 토큰을 발행했다. 블록스택 STO 구매자는 블록스택 플랫폼 상의 응용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다.

블록스택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서버에 접속해 IT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제공한다. 블록스택은 STO를 통해 2800만달러(약 335억원)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블록체인 기업 유나우(YouNow)도 STO로 2400만달러를 조달했다. 이를 두고 SEC의 관리감독이 적용되는 새로운 자금조달 체계가 확립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효과적인 자금조달 수단으로 STO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SEC는 A+의 자금조달 한도를 7500만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한편 등록면제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진입 장벽을 낮췄다.

정승기 한국은행 변호사와 김성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증권법 연구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미국 금융규제당국은 분산원장과 ICO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기반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보다는 새로운 입법 없이 개별 사안 별로 그 실질에 따라 기존 증권 규제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규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규제 후 육성... 침체기 빠진 증권업계 STO로 활로 모색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선규제 후육성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마운트곡스와 코인체크 거래소 해킹이라는 뼈아픈 경험이 있다. 대규모 투자자 손실을 겪은 일본 정부는 이용자 보호를 방점에 두고 법안을 개정했다.

일본은 2019년 5월과 2020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결제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지급결제 토큰은 자금결제법, 증권토큰 발행은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해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진입시켰다. 지난해 5월에는 부정행위, 풍설의 유포, 시세조정 금지 등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을 추가하며 투자자 보호를 강화했다.

STO는 현재 일본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적이 줄어드는 일본 증권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일본이 미국과 보조를 맞춰 일찌감치 STO를 제도권으로 편입시킨 영향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9월 2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증권업계는 주식 시장의 활황에도 불구, 실적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안으로는 수수료 무료화를 내건 인터넷 증권사와 경쟁이 심해지는 동시에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대형증권사는 STO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일본 부동산 기업 시큐리타이즈 재팬과 라이풀이 STO로 1500만엔의 자금을 모집해 올해 1월부터 운영중이다. 같은 시기 SBI 홀딩스는 증권사로는 최초로 자회사 주식을 토큰화해 발행했다. 올해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은행이 수익증권 발행신탁을 토큰화하였으며 사모 방식에 의해 모집했다. 이 밖에 노무라증권,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수익증권 발행신탁의 토큰을 공모의 형태로 모집했다.

꿈쩍않던 한국정부, STO 자본시장법 적용 ‘군불떼기’

현재 국내 STO 규제는 방치 후 육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2018년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한다는 발표를 낸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별다른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가상자산을 이용한 대규모 횡령과 사기 범죄가 횡행했지만 정부는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라며 선을 그은 데 그쳤다. 일찌감치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한 선진국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국회와 시장에서는 정부가 시장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금융위가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부동산 수익증권 업체 카사코리아를 지정하면서 육성 방안이 먼저 등장하게 됐다. 다만 한시적 규제완화라는 점에서 선진국 차원의 시장 육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6월이 돼서야 증권형 토큰에 자본시장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법 적용 기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은 내국인이나 외국인이 발행한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된다.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으로 분류되면 증권형 토큰 발행사는 금융위에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되면 유통과 매매 등에 증권 규제가 적용된다. 국내에서는 부동산 수익 증권을 운영하는 세종텔레콤과 엘리시아 등이 대표적인 STO 발행기업으로 분류된다.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업자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STO를 중개하지 못한다.

권단 디케이엘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STO가 증권사에서 거래되고 이익과 배당 등으로 투자자 관심이 쏠리면 시장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다"라며 "고객의 투자 대상 시장이 넓어지는 동시에 STO와 관련해 공시나 검토 보고서를 받아보는 등 가상자산 거래가 투명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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