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KT 아현국사 화재는 서울 일부 지역의 통신망에 치명상을 안겼다. 유무선 인터넷 회선은 물론 일반 상점의 결제 솔루션이 막히는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를 통해 재발 방지에 나서는 등 진화에 나섰다.

아현국사 화재 발생 3년이 지난 2021년 10월, KT 유무선 통신망이 85분간 마비되는 사태가 재발했다. 사후약방문으로 만든 통신·전력공급망 이원화 전략은 마비를 전혀 막지 못했다. IT조선 취재 결과, 정부는 통신사업자들의 통신망 이원화 등 올해 사업 현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11월 발생한 KT아현국사 화재 이후 합동감식반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 / IT조선 DB
2018년 11월 발생한 KT아현국사 화재 이후 합동감식반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 / IT조선 DB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통신 업계에 따르면, 25일 발생한 KT 유·무선 통신 장애로 국가 통신 재난 관리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된다. 2018년 KT 아현국사 화재에 이어 이번엔 전국 단위의 통신 마비 현상이 발생한 탓이다.

2018년 11월 당시 KT 아현국사 화재는 서울 강북과 경기 고양시 등 수도권 북서부 지역의 통신 장애 문제를 낳았다. 복구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통신 장애가 지속하면서 휴대전화와 인터넷, IPTV 등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ATM과 카드 단말기 등의 서비스도 중단되며 지역 상권의 피해가 컸다.

25일 발생한 KT 유·무선 통신 장애는 85분간 벌어졌지만, 전국 단위로 발생한 일인 만큼 피해 규모가 크다. 25일 오전 11시 20분쯤 전국에서 KT 인터넷 장애가 발생하면서 전국 직장과 학교가 마비됐다. 대략적인 복구는 낮 12시 45분에 완료됐지만, 점심 시간대인 탓에 식당, 카페 등에서 영업 피해가 발생했다. 증권가에선 이번 피해를 1시간으로 책정했을 때 보상 규모가 73억원일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도 나왔다.

이처럼 국가 통신망 관리 체계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는 상황이지만 현 정부의 정책 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KT 아현국사 화재 이후 통신재난방지 및 통신망 안정성 강화 대책을 내놓고 2019년부터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중요 통신 시설을 지정해 통신사가 해당 시설의 통신망 및 전력공급망을 이원화하도록 감독하는 등 안전한 통신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애쓴다.

올해 심의위원회 회의는 9월까지 총 세 차례 열렸다. 9월 열린 2021년도 제3차 심의위원회에선 중요 통신 시설의 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방송통신 발전법(6월 개정)과 관련한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한 논의가 있었다. 통신사의 5세대(5G) 기지국이 늘어나면서 중요 통신 시설을 2021년 887개소에서 2022년 903개소로 확대하는 내용을 합의했다. 통신 재난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살펴야 하는 시설이 늘어난 셈이다.

2020년 제3차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 개최 과정에서 공개된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 및 전력공급망 이원화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표 / 과기정통부
2020년 제3차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 개최 과정에서 공개된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 및 전력공급망 이원화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표 / 과기정통부
하지만 중요 통신 시설을 관리하는 책임은 온전히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4사와 8개 기타 사업자의 몫이다. 과기정통부는 해마다 수립되는 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각 사업자가 이행했는지 여부만 연말에 보고 받을 뿐, 이행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피거나 관리하지는 않는다. 만약 연말에 이행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미이행 사례가 있을 경우 이를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정도였다.

IT조선 취재 결과, 과기정통부는 올해 진행 중인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 및 전력공급망 이원화 이행 정도 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당연히 통신 4사별 진행 상황 파악도 불가했다. 현장 점검이나 중간 단계 보고 등의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에게 올해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 및 전력공급망 이원화 이행 정도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연말이 돼야 파악할 수 있다" 정도였다.

그는 "통신사가 통신망 이원화를 했더라도 점검을 안 한 시설이 있어서 점검이 다 끝난 연말에 (통계를) 취합한다"며 "이행 결과를 심의위원회에 보고하면 다음연도 회의 때 공개하게 된다"고 말했다. 2020년 통신사별 이행 결과가 올해 5월에 공개된 만큼 올해 이행률 역시 내년 5월에나 알 수 있는 셈이다.

한편 통신 4사는 올해 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에 따라 연말까지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과 전력공급망의 이원화를 모두 완료해야 한다. 8개 중소 사업자는 2023년까지 중요 통신 시설의 통신망과 전력공급망 이원화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같은 계획이 다 이행돼야 연말에 대상 시설의 98.5%의 통신망 이원화를 마칠 수 있다. 전력공급망 이원화는 92.7%의 이행률을 기대할 수 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