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토종 OTT, 지상파 믿고 안방서 땅따먹기 할 때가 아니다

입력 2021.11.22 06:00

한국이 세계 문화와 콘텐츠 중심에 섰지만, K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어둡다. 콘텐츠 유통을 담당하는 글로벌 OTT 사업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는 사업자 하나가 없다. 토종 플랫폼은 좁은 한반도 시장 땅따먹기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주요 부처는 2020년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이하 디미생)’ 활성화 방안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선언했지만,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방 OTT 시장을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외산 플랫폼에 다 넘겨줄 판이다. 한국 콘텐츠 제작 업체는 외산 OTT 사업자의 콘텐츠 생산 기지화 위기에 처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정부가 기존 정책을 펴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처럼 손놓고 있기에는 시장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조급한 마음만 갈수록 커진다.

한국 문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잘 통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아이돌 가수 BTS가 수년째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시청 시간이 16억시간을 넘어섰다. 한국 태권도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미국)을 넘어 프랑스의 갓 탤런트에서 골든 버저를 획득하며 결승에 올랐다.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을 상대로 대활약 중이다. 우리가 잘만 만들면 얼마든지 국익을 극대화하는 기회의 장을 열 수 있다.

하지만 핑크빛 전망을 얘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쁘다. 정부는 넷플릭스와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의 글로벌 OTT 사업자를 배출하겠다고 했지만, 디미생 전략 발표 후 큰 진전이 없다. OTT 진흥보다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 등 규제에 더 관심을 보인다.

OTT 사업자 키우기가 어려우면 대형 콘텐츠 사업자 출범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메가급 규모의 콘텐츠 사업자가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콘텐츠 시장을 장악한 지상파 방송사가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M&A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 자본의 유입을 돕는 민간 콘텐츠 투자 활성화 제도나 세제 지원, 긴급 펀드 조성 등 정부 차원의 파격적 행보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네트워크 사업자 중심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하거나 디즈니처럼 콘텐츠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통신사업자인 AT&A는 타임워너를 인수했고, 디즈니는 1996년부터 ABC 방송사, ESPN, 픽사, 마블 엔터테인먼트, 21세기폭스 등 회사를 품에 안았다. 디즈니는 자체 경쟁력을 믿고 OTT 시장에 직접 뛰어든 후 승승장구 중이다. 반면, 한국은 CJ ENM과 JTBC 간 콘텐츠 분야 협력을 위안으로 삼는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 시장은 오징어게임 속 이야기처럼, 한 번 실패하면 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하이 리스크’ 시장이다. 작품이 대박을 치면 높은 수익(하이 리턴)을 얻을 수 있지만, 한국은 ‘로우 리턴’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오징어게임의 사례처럼, 작품 흥행의 과실은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가 아닌 투자사인 ‘넷플릭스’가 다 가져갔다.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보유한 탓이다. 메가급 K콘텐츠 제작사가 나오지 않는 한, 오징어게임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재발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콘텐츠는 국가 차원의 미래 성장 동력 중 하나다. 제2의 넷플릭스가 없어도 K콘텐츠 공룡 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콘텐츠 시장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기업 간 M&A 활성화와 이를 돕는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한시바삐 이뤄지길 기대한다. 오늘도 세계인은 오징어게임에 열광 중이다.

이진 디지털산업부장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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