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 격화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작업에 불똥이 튄 형국이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가 중국 경쟁 당국의 승인만 남았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심사는 모두 끝났다.

SK하이닉스는 연내 결합 승인이 날 것으로 보지만, 불발과 관련한 시나리오도 점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과 협의한 1차 클로징(연내 규제 승인 후 70억달러 지급) 시점도 내년으로 늦출 수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사장) / SK하이닉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사장)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20일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달러(10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가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문턱이 높다.

3분기만 해도 중국이 연내 기업 인수를 승인할 것으로 보였다. 노종원 경영지원담당 부사장은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도 연내 승인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 행보가 부각되며 상황이 돌변했다. 중간에 낀 SK하이닉스의 입장이 난처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국가안보상 위협을 우려해 자국 주요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중국 내 실리콘 웨이퍼 생산시설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인텔은 부랴부랴 중국 공장에서의 반도체 생산량 증가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대안을 모색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 건을 놓고 8개국 중 7개국이 경쟁 제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중국 기업에도 경쟁 제한이 전혀 없다는 게 업계의 합리적 추론이었다"면서 "미국의 중국 공급망 견제가 서서히 표출되자 SK하이닉스와 인텔을 향한 중국의 ‘몽니(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가 장기화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연내 규제 승인을 마친 직후 1차로 70억달러(8조3000억원)를 인텔에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 SSD 사업(SSD 관련 IP 및 인력 등)과 중국 다롄 공장 자산을 자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이 연내 승인을 하지 않으면 양사는 합의를 통해 1차 클로징 목표 시점을 연장할 계획이다. 2차 잔금을 지급하는 양수 기준일(2025년 3월 15일)만 차질이 없다면 중국의 승인을 좀 더 기다리겠다는 의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연내 8개국 기업결합 승인은 양사가 합의한 목표일뿐이지 계약 결렬의 요소는 아니다"라며 "인텔은 낸드 사업을 내려놓고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와 조율을 통해 계약을 관철하려 할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인수뿐 아니라 중국 D램 공장의 첨단화가 늦어질 수 있는 겹악재를 맞았다.

외신과 반도체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공장에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배치하려는 계획이 미 정부의 제동으로 무산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EUV 장비 도입이 늦어지면 중국 공장의 공정 개선이 지연 돼 삼성전자나 마이크론과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미 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에도 EUV 장비의 중국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사장)는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와 관련해 "중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면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내 결정이 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EUV 장비 중국 반입에 대한 우려에 대해선 "(미국 정부와) 충분히 협조하면서 (EUV 장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잘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