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업권법이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업계에서는 관련 연구와 이해도 부족을 이유로 시장 육성과 투자자 보호 둘 다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 인사들이 업권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대선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다음날까지 가상자산 업권법 논의를 이어간다.

앞서 정무위는 지난 17일 제1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업권법 검토에 착수했다. 가상자산 법안은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은 연내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2030 표심을 겨냥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당 업권법 속도…"육성·규제 모두 놓칠라" 업계 우려

업권법이란 특정 업종에 대한 근거법을 말한다. 가상자산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분류를 세밀히 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 방안을 강화하고 시장을 건전하게 육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업권법은 총 13건이다. 이중 법을 새로 만드는 제정법이 7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4건, 특금법 개정안은 2건이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사업자의 불공정거래와 이해상충을 금지하고 있다. 이용자 예치금을 분리보관하고 해킹 사고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반면 최근 급격히 성장한 대체불가능토큰(NFT), 탈중앙화금융(Defi), 스마트계약 등에 대한 정의나 내용은 없다. 이대로 법안을 시행할 경우 신기술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대형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국회에서 발의된 대다수 법안은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술진화 속도가 빨라 긴 호흡으로 충분히 연구·소통한 후 법을 제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내 제정은 너무 이르다"며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술과 시장을 분석하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투자자 보호 방안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가상자산 사업자의 상장심사 기준과 심사 주체에 대한 내용이 불명확하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신고수리를 마친 사업자의 마켓에 상장된 가상자산 대부분은 증권신고서에 해당하는 한글 백서를 제공하지 않아 투자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상자산 사업자 측은 "공시제도 등 내용을 보면 이미 국회에서 다뤘던 수준에서 약간 보완된 정도다"라며 "실질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인 지는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업계는 이러한 부분을 세밀히 다루지 않고 대선용으로 급하게 추진하는 인상을 주는 데 대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급하게 마련된 공청회" 지적...전문가 "신중해야"

야당에서는 신중론이 등장한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업권법 공청회에서 관련해 언급이 있었다. 법 제정 과정에서 공청회를 급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이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무위는 공청회를 불과 나흘 앞둔 12일에 출석 전문가를 결정했다. 최종 진술서는 공청회 하루 전인 15일에 받았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당사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 법률 제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입법 취지를 극대화하는 게 (공청회의) 목적이다"라면서 "이처럼 분초를 다퉈 속도전으로 공청회를 개최하고 아주 짧은 제한된 시간에 처리해야 할 것이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날 공청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업권법 제정에 공감하면서도 업계 소통과 법률안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무공시제도 도입 ▲불공정거래 금지 규정 도입 ▲실질적으로 감독 집행할 수 있는 집행력 세 가지를 강조했다. 현재 업권법은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제안을 담고 있지 않다.

서동원 스테이션블록 대표는 이날 "현재 논의 중인 가상자산 법안은 가상자산 거래의 피해사례 구제를 위한 규제에 집중하고 있다"며 "태생적으로 이 시장은 정부와 공급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시장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종 규제 입안에 앞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자 보호와 더불어 사업자 보호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근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은 "블록체인 산업계에서 업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오히려 산업에 선제적 규제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라며 "네거티브 방식의 선별규제로 전환돼야 하고 이를 통해 시장교란행위가 발생하는 지점에 개입하는 핀셋 규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업권법 단계별 적용 주장...2030 표심 잡기 ‘무리수’ 의견도

이날 공청회에서 언급된 내용이 법안에 반영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업계 반발에도 불구 이대로 법안을 시행할 경우 2030 표심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업권법 통과로 시장이 죽는다는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여당은 업권법으로 훈장을 달고 싶어하는 데 자칫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경우 오히려 불명예를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과연 서두를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시장과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우선 속도를 늦추는 방안이 있다. 두번째는 진흥을 중심으로 최소한만 담고 단계별로 규제를 높여가는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한다면 늦어도 일년 전에 업권법 통합 초안이 나왔어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 국회는 어떤 내용의 업권법을 추진하고 있는 지 관련 초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엽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는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1년 전부터 법안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다. 검토를 지속한 후 권고안을 낸다"며 "아직 초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업권법 제정으로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거나 시장이 육성되리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다. 시세 조작 등을 막기위한 목표라면 원포인트로 다루면 될 것이다. 이대로 법안을 추진하면 시장 진입장벽을 높여 독과점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는 30대 남성 투자자는 "투자자 보호라는 말만 붙일 것이 아니라 시장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표심잡기에 급급해 법안을 만들지 말고 2030 세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법은 한번 만들면 수정하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젊은 세대와 충분히 소통한 뒤 법을 만드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고 제언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