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中·日에 밀리고 규제에 발목 잡힌 로봇산업

입력 2021.11.25 06:00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비대면 배달 수요가 폭증했다. 배달 편의를 높이는 자율주행 배달 로봇 개발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낡은 규제 탓에 배달 로봇 상용화는커녕 개발마저 쉽지 않은 처지다. 우리가 주춤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 등의 로봇까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며 토종 로봇 산업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로봇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각종 법 규제가 자율주행 로봇 개발의 걸림돌이라고 평가한다. 로봇을 만들어도 건물 밖에서 달리지 못하니 데이터 수집은 물론 각종 문제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업계가 지목하는 정부 규제는 크게 ‘도로교통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두 가지다.

배달 로봇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차도와 인도에서 주행할 수 없다. 오래전 만든 법인 탓에 로봇 주행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상황에 따라 차도나 인도 위를 달려야 하는데, 도로는 자동차나 말이 아니라 못 가고 인도는 사람이 아니어서 못 달린다. 최신 배달 로봇이 실내에서만 운행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덕에 일부 지역에 배달 로봇이 달리지만, 확산은 어렵다. 배달 로봇이 제대로 달리려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동작 방법을 익히는 빅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 확보 자체에 한계가 크다. 규제 샌드박스 시한이 2022년 3월까지라는 점도 배달 로봇 개발업체를 답답하게 한다. 업체가 요청하면 2년 연장해 주겠다고 하지만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도 자율주행 로봇 개발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자율주행 로봇은 여러 대의 카메라와 센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해 차도나 인도 상황을 스스로 인지한 후 움직인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제센터를 통해 조종을 받는다. 하지만, 배달 로봇에 카메라를 달기도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촬영한 영상을 내부에 저장하거나 외부로 송출하면 안 된다. 일부 업체는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자동차용 블랙박스를 달아 테스트에 나서는 편법을 쓴다. 로봇 개발 업체들은 카메라에 잡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모자이크 하는 방식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년 3월 이후에는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다.

어렵게 배달 로봇을 개발했다 해도 갈 길이 멀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와 일본산 산업용 로봇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배달 로봇을 만들면 중국 업체가 반값도 되지 않는 가격에 비슷한 성능의 로봇을 내놓고, 산업용 B2B 시장에서는 일본 업체가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중국 샤오미는 최근 ‘사이버독'이란 이름의 4족 보행 로봇 개를 180만원쯤에 선보였다. 최근 현대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의 가격이 8000만원대인 것을 고려하면 3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보급이 시작된 서빙 로봇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서빙 로봇은 국산 대비 반값도 안 한다.

국내 로봇업체 한 관계자는 "일단 로봇이 거리에서 달릴 수 있게라도 해주면 좋겠다"며 "법 규제가 사라지지 않으면 제품 개발은 물론 상용화도 어렵다"며 "겨우 일어선 로봇 업체들이 자립할 수 있게 규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업계는 퀵커머스 시장 급성장으로 자율주행 배달 로봇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평가한다. 시장 수요에 맞춰 국내 로봇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정부가 직접 규제의 장막을 걷어줘야 한다. 현재 서비스 로봇 시장에는 절대강자가 없다. 누구든 주도권을 잡으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정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로봇 시장에 기업이 나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스스로 글로벌 진출 기회의 싹을 자르면 안 된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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