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경쟁사인 LG전자의 최대 협력사.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관계다. 한마디로 껄끄럽다. LG전자가 LG디스플레이로부터 패널을 공급받아 OLED TV를 출시한 후 삼성전자는 꾸준히 약점인 ‘번인(Burn-in·장시간 TV를 켜 놓았을 때 화면에 잔상이 남는 현상)’을 부각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OLED 패널을 만든 LG디스플레이로선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스치듯 잡았던 손을 꽉 잡는다. 내년 양사 간 TV용 LCD 패널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적대적 공생’ 관계가 강화된 것이다. 한쪽의 간절함 보다는 양사의 필요로 이뤄진 동맹이다.

삼성전자 네오 QLED TV / 삼성전자
삼성전자 네오 QLED TV / 삼성전자
5일 전자·디스플레이 업계와 양사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LG디스플레이로 공급받는 TV용 LCD 패널을 5배쯤 늘릴 계획이다. 중화권 LCD 제조사로부터 공급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이들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삼성전자는 TV 생산에 필요한 LCD 패널 70% 이상을 CSOT, AUO, BOE 등 중화권 제조사에 의존해왔다. 공급업체에 휘둘릴 수 있는 이같은 구조는 LCD 가격이 폭등한 올해 TV 사업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삼성전자는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도 2020년 말까지로 예정한 대형 LCD 사업 철수를 2022년까지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LCD TV 비중을 낮추기 위해 2022년 QD디스플레이(QD-OLED) TV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내년 판매할 수 있는 QD디스플레이 TV 수는 50만대쯤으로 연간 출하량의 1%를 겨우 넘는다. 사업에 영향을 주기엔 미미한 규모다. 내년에도 LCD 패널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수익성 개선의 최대 관건이 된다. LG디스플레이와 거래에 적극 나선 이유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 / LG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 업계는 LG디스플레이 역시 철저한 손익 계산 아래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본다. LG디스플레이 매출에서 LCD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 만큼, 공급을 원하는 고객사 확보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5289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동기 대비 221.8% 증가했지만, LCD 패널 가격 하락 직격탄을 맞아 2분기(7011억원) 대비 25% 감소했다. 증권가가 예상한 8000억원 대비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G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 OLED 사업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쟁사 삼성디스플레이와 입장이 다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사업에서 완전 철수하더라도 부담이 없는 반면,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은 아직 LCD 사업의 흥망성쇠에 좌지우지된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매출 비중은 LCD 60%, 대형 OLED 30%, 중소형 10%쯤이다.

주력으로 미는 대형 OLED TV 패널의 확장성과 수익성에도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도 있다. LCD 패널과 경쟁을 위해 LG디스플레이가 OLED 패널 가격을 과도하게 내린 부분이 없지 않고, LG전자를 제외한 고객사의 OLED TV 비중도 기대 만큼 늘어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1년 OLED TV 시장 점유율에서 LG전자가 61.8%로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56.1%) 보다 4.7%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2위 소니는 19.1%, 3위 파나소닉은 5.7%로 지난해 보다 점유율이 2~3% 줄어든 것이 우려스럽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양사가 LG전자와 달리 OLED TV 비중 확대에는 소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가 LCD 사업을 과감히 철수하기엔 OLED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해 부담이 클 것이다"라며 "LCD 생산을 유지하며, 삼성전자로 공급을 늘리는 판단이 안정적이라는 결론이 섰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