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제2 도시 예테보리 인근 외곽도로에서 차량사고가 발생한다.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중이다. 형광 점퍼를 입은 일단의 작업자들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작업복에 ‘볼보 차량사고 조사팀’이라고 쓰여있다.


볼보의 차량사고 조사팀 / 볼보
볼보의 차량사고 조사팀 / 볼보
스웨덴 완성차 기업 볼보는 예테보리 본사 반경 100km내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차 사고 발생 시 이 조사팀을 현장에 급파한다. 운전자와 목격자 진술은 물론, 경찰의 조서 내용, 탑승자 부상 부위와 정도 등을 토대로 사고 원인을 파악한다. 필요시 해당 차량을 본사로 회수해 정밀 감식한다. 볼보는 이같은 작업을 이미 반세기 전인 1970년부터 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3만건 이상의 사고분석 통계를 축적해놨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는 볼보 신차 개발에 활용된다.


1970년대부터 자체 사고 정밀 조사팀을 운영중인 볼보 / 볼보
1970년대부터 자체 사고 정밀 조사팀을 운영중인 볼보 / 볼보
세이프티 원조 맛집, 볼보

볼보하면 대다수 운전자들에게 ‘세이프티’ 즉 안전의 대명사로 인식되곤 한다. 여기엔 볼보만의 태생적 이유가 있다. 춥고 험준한 북유럽 최북단 스웨덴의 지리적·지형적 여건 하에서 튼튼한 차, 안전한 차는 선택이 아닌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필수 조건였다.

볼보가 1959년 미 특허청에 출원한 특허 ‘Safety belt’는 오늘날 대다수 자동차에 필수 탑재되는 ‘3점식’ 안전벨트의 원조다. 당시 차량의 평균 속도가 시속 50K~60㎞였으니, 볼보 벨트만 하고 있으면 어떤 충돌 사고에도 거의 100% 생존율을 자랑했다.

그렇다면 볼보는 이 특허로 떼돈을 벌었을까? 아니다. 볼보가 이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개방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이 걸린 특허로 이익을 편취할 수 없다"는 게 당시 볼보의 특허개방 이유였다.

그 뒤 재밌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른바 볼보 이펙트 즉 볼보 효과인데, 유럽과 미국의 완성차 업계에선 안전 관련 특허기술은 사실상 대부분 무상 개방되는 관행이 생긴 거다. 이 아름다운 선례의 시작엔 바로 볼보가 있다.


볼보 ‘세이프티 벨트’와 후행식 영유아 시트 상세 도면 / USPTO
볼보 ‘세이프티 벨트’와 후행식 영유아 시트 상세 도면 / USPTO
2021년 12월 현재 볼보가 보유중인 총 1441건의 US 특허 가운데 194건이 안전 관련 특허다. 13.46%에 해당한다. 반면, 테슬라의 세이프티 특허 비율은 전체 보유특허의 4.92%다.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 현대기아차는 이 보다도 못한 2.19%다. 차 생산업체 입장에서 안전 관련 투자는 사실상 매몰비용이다. 사고 안나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안전 관련 기술투자에 인색하다. 하지만, 미 포드를 거쳐 중국 지리자동차에 피인수된 지금도 볼보의 휴머니즘 테크놀러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자동차 곳곳에 탑재돼있는 각종 안전장치를 보면, 그 원조가 볼보인 기술이 많다. 아동 사고 사망율을 혁신적으로 낮춘 ‘후행식 영유아 시트’는 이미 1964년 볼보에 의해 첫 프로토 타입이 세계 최초로 제작됐다. 이후, 이 기술은 ‘어린이 머리보호 전용 에어백’ 특허에 이르기까지 진화 발전중이다.

요즘 출시되는 대다수 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측후방 사각지대 경보 시스템’(BLIS)도 이미 2003년 일찌감치 볼보가 내놓은 기술이다.


볼보의 ‘측후방 사각지대 경보 시스템’ 관련 특허도면 / USPTO
볼보의 ‘측후방 사각지대 경보 시스템’ 관련 특허도면 / USPTO
인간지향의 볼보 안전기술은 탑승자 보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인 충돌 순간, 차량 본닛과 앞유리에서 에어백이 나와 보행자를 보호하는 기술 역시 10년전인 2012년 출원된 특허다.

이밖에도 ‘시티 세이프티’ 기술로 통칭되는 각종 자동제어, 자동회피 시스템을 비롯해 후방추돌경고 시스템,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 전복 방지 시스템, 커튼식 측면 에어백 등은 모두 원조 맛집인 볼보의 기술들이다.

볼보의 보행자 보호 에어백 기술과 볼보 기술을 원형으로 구성된 현대 자동차의 시티 세이프티 기술 / 볼보
볼보의 보행자 보호 에어백 기술과 볼보 기술을 원형으로 구성된 현대 자동차의 시티 세이프티 기술 / 볼보
최신 특허 속 기술지향점

여기서 볼보의 최신 특허 하나를 보자. 2021년 2월, 미 특허청이 공개한 ‘날씨 데이터를 이용한 노면 조건과 도로마찰 추정값 도출법’이란 특허다. 당일 날씨 데이터를 근거로,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예상주행경로상 노면 조건과 해당 도로의 마찰지수를 추정해 최적의 안전경로를 도출해낸다.

마치 실시간 내비가 막힌 도로를 우회토록 추천경로를 제시하듯, 차량의 현재 주행능력과 날씨정보를 감안, 위험한 도로를 선제적으로 걸러준다. 이를 위해 볼보는 주위 차량의 주행정보를 클라우드 상에 모아 일종의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토록 한다. 다가올 ‘자율주행시대’를 대비한 포석인 셈이다.

 / US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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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에 타협은 없다.

2020년 5월 볼보는 소비자의 귀를 의심케 할 중대발표를 한다. 향후 신규 생산차의 최대 시속을 180㎞로 제한하겠단다. 자신들의 보유기술로는 그 이상의 속도에서 사고시 운전자 보호를 담보할 수 없으니 그게 싫은 잠재고객의 이탈은 감수하겠다는 얘기다. 안전에 관한한 타협없는 볼보의 세이프티 철학이 그대로 엿보이는 대목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유경동 IP컬럼리스트

윕스 전문위원과 지식재산 전문매체 IP노믹스 초대 편집장, 전자신문 기자 등을 역임했다. EBS 비즈니스 리뷰(EBR)와 SERICEO에서 ‘특허로 보는 미래’를 진행중이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 △글로벌 AI특허 동향 △특허로 본 미래기술, 미래산업 등이 있다. 글로벌 특허전문 저널 英 IAM 선정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에 꼽혔다. ㈜ICTK홀딩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