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웹툰·웹소설 유통 늘면서
네이버 시리즈 모니터링에 구멍

네이버 시리즈에서 동일한 중국 웹툰이 제목만 바꿔 서로 다른 회사에서 연재하다 뒤늦게 중복 작품을 삭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가성비’가 좋은 중국산 웹툰이나 웹소설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자랑하는 네이버가 돈벌이에 급급해 중국산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저작권 모니터링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된 결혼을 되돌리는 법(왼쪽)과 전남편 말고 그남자(오른쪽)은 같은 작품인데 제목만 바꿔서 네이버 시리즈 내에서 중복 연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 시리즈 화면 갈무리 (2021년 11월 기준)
잘못된 결혼을 되돌리는 법(왼쪽)과 전남편 말고 그남자(오른쪽)은 같은 작품인데 제목만 바꿔서 네이버 시리즈 내에서 중복 연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 시리즈 화면 갈무리 (2021년 11월 기준)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네이버 시리즈에는 같은 작품이 다른 작품명으로 중복 게재됐다가 뒤늦게 내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잘못된 결혼을 되돌리는 법'(작가 SB, 출판사 넥스큐브)’와 ‘전남편 말고 그남자'(작가 소명태극, 출판사 비브로스팀)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여자 주인공이 이혼을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담은 동일 작품이다.

이 같은 중복 게재는 국내 출판사들이 중국 웹툰 작품을 구매해 번역한 뒤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비브로스팀 설명을 종합하면 중국 제작사는 작품의 글로벌 유통권을 ‘소명태극'이라는 중국 플랫폼에 넘겼다. 비브로스팀측은 소명태극에서 국내 판권을 정식 구매해 국내 유통을 시작했다. 반면 넥스큐브는 정식 판권을 팔아버린 제작사에게서 해당 작품을 구매했다. 결국 넥스큐브의 작품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는 설명이다.

넥스큐브측은 "정식계약서를 작성하고 작품을 유통했다"면서 "중국 내의 유통권이 복잡하기 때문에 두 출판사에서 판권을 사 발생한 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넥스큐브가 시리즈에서 먼저 연재한 ‘잘못된 결혼을 되돌리는 법’은 162회까지 게재했다가 2021년 11월 23일 삭제된 상태다.

관련업계, 네이버 시리즈 모니터링 책임 지적

업계에서는 유통 플랫폼으로서 네이버 시리즈가 모니터링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동일 작품이 제목과 작가명을 바꿔 시리즈에 게재했는데도 이를 정식 연재 전에 걸러내지 못한 것은 백화점에서 ‘짝퉁’을 파는 것처럼 플랫폼으로서 모니터링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툰 작가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네이버 시리즈에 책임이 있다"며 "작품 리스트를 제대로 관리·유지하고 있었다면 이 같은 사례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작가도 "시리즈는 제작사 위주로 작품을 유통하고 있다. 타 플랫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재 문턱이 낮다"며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작품 노출을 위한 사전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시리즈 같은 플랫폼이 출판사와 제작사에게서 적잖은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은 중복 작품을 거르고 모니터링하는 등 콘텐츠 유통과정에서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네이버 시리즈 직원들은 자사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제품도 읽어보지 않은 거 같다"고 지적했다.

비브로스팀 측에 따르면 새 작품을 론칭한 이후, 모니터링 과정에서 같은 작품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뒤 이에 대한 협의를 넥스큐브 측에 요청하면서 작품 연재 정리가 진행됐다. 실제로 앞서 비브로스팀이 연재한 작품에는 독자들이 동일 작품 존재 가능성을 지적하는 댓글들을 달았다. 해당 작품을 먼저 접한 독자보다 플랫폼이 한발 늦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네이버 시리즈 메인 화면 갈무리
네이버 시리즈 메인 화면 갈무리
네이버웹툰 같은 플랫폼과 비교할 때 시리즈의 전반적인 큐레이션 질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시리즈는 수수료를 가져가는 반면 작품 노출 빈도가 타 플랫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카테고리 정리도 불분명하다"며 "작품이 많이 유통되고 있어서 관리가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작가 개인으로서 불편함이 있다"고 꼬집었다. 작가들과 다수 소통하는 업계 관계자도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는 중국 작품을 통해 ‘작품 진열대'를 손쉽게 채우면서, 정교한 모니터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시리즈 입점에 대한 작가들 기대치는 높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리즈는 작가 개인 간의 계약보다는 CP사들을 중심으로 작품이 계약되어 연재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는 시리즈의 이 같은 특성을 ‘오픈마켓'형 플랫폼과 같은 형태라고 말한다. 작품 입점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 비해서, 상당히 많은 작품이 연재되면서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일일이 시리즈 MD들이 확인을 하기에는 취급하는 저작권 수가 너무나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행적으로 해왔기에 그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이버 측은 시리즈가 작품 내용을 일일이 비교해 게재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시리즈는 작품의 표현적 검수와 같은 서비스 적합성을 검토할 뿐 타 작품과의 내용 비교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며 "시리즈는 CP사와 원작사 간 계약 내용에 대해 관여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런 사례가 발생할 경우 사후 조치하고 있고, 환불과 시정 조치한다"고 설명했다.

서유경 법무법인 아티스 변호사는 "시리즈의 온라인 서비스제공자(OSP)로서 법적 의무만 따지면 적극적으로 작품 저작권을 일일이 검사할 의무는 없다"며 "그러나 네이버 시리즈 측에서 유통 계약을 할 때 적어도 동일한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