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려운 질문을 한 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질문은 간단했다. ‘와이푸 사태’와 관련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대책이 무엇인지다. 하지만 약 18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게임위 관계자는 게임위가 얼마나 대처를 잘해오고 있는지만 설명했다. 대외용이라도 책임감 있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와이푸 사태는 최근 ‘와이푸-옷을 벗기다’라는 제목의 게임과 관련해 일어난 선정성 논란을 말한다. 와이푸는 싱가포르 게임 개발사 ‘팔콘 글로벌’이 출시했다. 이용자가 여성 캐릭터와 가위바위보를 해 이길 경우 여성 캐릭터의 옷이 하나씩 사라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에서 전부 이기면 여성 캐릭터는 속옷 차림으로 남는다.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건을 넘기며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인기 게임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선정적 게임이 ‘15세 이용가’ 등급 판정을 받고 출시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구글은 해당 앱을 삭제 처리했다. 하지만 이미 앱을 다운로드한 사용자는 여전히 다시 받기가 가능하다.

와이푸 사태는 현행 자체등급분류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게임 제목에 ‘옷을 벗기다’와 같은 자극적 문구가 버젓이 포함됐음에도 제대로 된 등급 분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체등급분류 제도는 게임 산업이 커짐에 따라 다양한 신규 게임이 쏟아지면서 기존 규제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게임법이 개정되며 등장했다. 현재 게임위가 지정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구글, 애플 등 모두 10곳이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과 사행성 게임을 제외한 게임에 대해 자율적으로 등급을 지정해 유통한다. 게임위는 사후 관리를 맡는다.

이러한 자체등급분류 제도에 구멍이 생긴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20년 한국 게임사 아이엔브이게임즈가 출시한 게임 ‘아이들 프린세스’에도 선정성 논란이 발생했다. 해당 게임은 아동을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문제가 됐다. 이후 게임위는 해당 게임을 청소년 이용불가로 직권 재분류했다. 이번 와이푸 사태는 아이들 프린세스 논란 이후 1년여 만에 발생했다.

하지만 일부 게임위 관계자들은 ‘주어진 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이런 일은 몇 년에 한 번 나오는 일이다’라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들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2021년 한 해 동안 98만건 정도의 게임이 출시되고, 그중 구글이 자체 등급분류한 게임은 약 23만건이에요. 그중 게임위가 등급을 재조정하거나 수정한 것이 2000건 정도고요. 또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매년 평가를 받고 3년마다 재지정 심사를 받습니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부 제도를 더 강화하고 있어요."

특히 사후 관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답변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서 한국게임학회는 게임 내 이벤트 업데이트를 내용 수정 신고와 동시에 기습적으로 진행하면서 게임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게임위 관계자는 "게임법상 내용 수정이 필요한 경우 24시간 내에 신고하라고 나와 있다"며 "게임사에서는 24시간 내에 신고하기 때문에 저희는 위법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모니터링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실이 인지되더라도 등급분류위원회가 한 주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아 즉각적 조치가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법과 제도의 문제로 화살을 돌렸다.

취재를 하면서 게임위로부터 게임물 등급 분류 주무 기관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여러 번의 통화와 질문이 이어진 끝에야 게임위가 이번 와이푸 사태에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게임위에서 10일까지 취한 조치는 구글에 보낸 공문 하나였다. 게임위의 다른 관계자는 "내부 규정이라든가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좀 더 개정해서 향후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는 내용의 시정 요청 공문을 구글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문제로 지적된 사후 관리, 평가 지침 등과 관련해서는 현재 정비와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게임위가 해온 그동안의 노력을 쉽게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주어진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수행하려다 보니 발생하는 어려움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게임위가 하고 있는 등급 분류 업무에 더욱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자기반성과 쇄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단 한 번의 잘못된 등급 분류로도 수십만 명의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임국정 기자 summe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