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한국이 코로나 백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진 이유가 질병 연구와 임상 등을 수행하며 과학과 의학을 연결해 줄 ‘기초과학’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모더나처럼 소규모 연구실 수준의 회사가 연간 수 조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기초과학이다.

라파엘 라이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은 "모더나 백신이 하루아침에 개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197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mRNA 백신을 만들기 위한 기초과학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며 "과학자들이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고 연구한 끝에 중국이 코로나19의 유전자 서열을 공개한 지 이틀 만에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고 202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설명한 바 있다.

모더나 공동 창업자로 유명한 로버트 랭거(Robert Langer)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 교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기초과학을 꼽았다.

보스턴, 케임브리지 같은 지역이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메카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도 MIT와 스탠퍼드가 기초과학을 뒷받침해 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에겐 아직 기초과학은 생소한 개념이다. 기초과학의 힘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는 대상이 아닌 모든 영역을 발전시키는 근간이다.

기초과학 자체로는 해당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나아가 어떤 기술과 접목돼 세상을 바꿀 지식으로 탈바꿈할지 아무도 모른 채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과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기초과학이 설 자리가 그동안 없었다.

최근 의사과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면허를 보유하고 치료제와 백신 등 신약 개발과 난치병 극복 등 과학 연구에 집중하는 의사 겸 과학자를 말한다.

페니실린, LDL 콜레스테롤과 스타틴 등 의학계에 큰 변화를 준 물질을 발견하고 개발한 것도 의사이면서 과학자였다.

하지만 한국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의사가 거의 없다. 기초의학 분야 연구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최근 5년간 국내 의대에서 배출한 의사과학자 수는 정원 대비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의학계 역시 현재 2조달러(240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헬스케어시장을 선점하고 한국이 글로벌 제약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의약품 등을 연구·개발이 가능한 공학 기반 의사과학자 양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생물학 기초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과학자)와 임상 현장에 있는 의료진(의사), 그리고 임상과 연구를 연계하는 의사과학자가 팀을 이뤄야만 한국이 백신 위기를 넘어 바이오·헬스케어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가는 코로나 사태를 국내 제약 바이오 생태계를 변화시킬 큰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진단키트와 같이 K-방역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한 기술뿐 아니라 백신과 치료제 등을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성과만을 강조하는 행정이 아닌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기초과학에 더욱 공을 들여야한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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