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의 인수・합병 무산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모양새다. 메가 조선사 탄생이라는 기대와 한국 조선산업 재편이라는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합병 무산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비조선 분야의 기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밸류체인(가치사슬)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한다는 방침이며 항소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관련업계에서는 결과가 뒤집히기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거 사례를 돌아봤을 때 결과가 바뀐 경우가 없으며 설령 현대중공업그룹 측이 항소에서 이긴다고 해도 기업결합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이후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대우조선의 새 주인 찾기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국내 조선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 인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대우조선의 액화천연가스(이하 LNG)선 사업부문을 분리한 뒤 재차 매각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 EU는 두 회사의 결합으로 인해 LNG선 시장 내 영향력이 커지고 이로인해 LNG선 선가가 비싸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해사기구의 환경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LNG선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LNG선은 고부가가치 상품이자 두 회사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삼성중공업 역시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중공업은 2021년 22척의 LNG선을 수주했다. 이는 현대중공업그룹(19척)보다 많은 수준이다.
조선기업이 대우조선 인수전 참여가 어렵게 되자 일각에서는 타 분야의 기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조선산업이 글로벌 톱티어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업계 개편이 시급한 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조선업과 연계할 수 있는 타 분야의 기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밸류체인 측면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은 LNG선뿐만 아니라 수소, 암모니아 등 친환경 추진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원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있는 기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원료생산과 제품 생산을 같이 할 수 있게 된다.
또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 사업도 전개하고 있어 중공업 분야 기업과 합병시 밸류체인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방산 분야에서도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22척의 잠수함을 수주했다. 또 한국형 경항공모함, 차세대구축함과 같은 첨단 함정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필요한 기술개발에도 열중하고 있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 교수는 "조선기업이 인수할 수 없다면 중공업 등 밸류체인을 실현할 수 있는 기업들이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우조선의 경우 수소, 암모니아 등 카본 뉴트럴 및 스마트 선박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해양 플랜트 사업도 있다"며 "선박 기술이 중요한 시점은 아니다. 선박 자체를 볼 것이 아니라 선박에 들어가는 내부 장비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