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통화 중에 녹음해도 되냐고 물으니 녹음하면 논의 진행이 불가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글로벌 정책만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하길래 한국 지사 맞냐고 물으니 한국어로 상담하지 않냐고 답변했습니다."

상담 내막을 모르더라도 기업의 소비자 대응이 상식에 벗어난 듯한 느낌이다. 얼핏 인공지능(AI) 자동응답 서비스 초기에 발생한 동문서답 같다. 놀랍게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애플의 사후관리(AS) 일화다.

국내 한 소비자는 2020년 12월 애플워치6 사용 중에 화상 전 단계인 접촉성 피부염이 생겼다. 제품을 사서 착용한 지 한두 시간 만에 벌어졌다. 애플은 당시 기기 회수가 먼저라며 보상 절차와 규모에는 침묵했다. 피해자는 애플이 진정성 있는 사과보단 책임만 회피하려 했다며 제보 내내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유사 사례가 또 발생했다. 애플워치4를 3년간 사용한 소비자는 운동 중 워치를 착용한 부위에 피부 궤양이 생겼다. 해당 소비자는 워치 착용 부위와 상처 범위가 같다는 병원 소견서를 애플에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사과 대신 발뺌이었다. 기기 문제보다는 사용자 피부 상태나 외부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애플은 애플워치4와 애플워치6, 애플워치SE에 이어 최신 모델인 애플워치7까지 유사 피해가 발생함에도 모두 소비자 탓을 했다. 종일 피부와 밀착될 수밖에 없는 기기를 판매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 피부가 민감한 탓으로 원인을 돌렸다. 운동 시 도움이 된다고 기기를 홍보하지만, 실상 선크림이나 땀에 의해 기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안내한다. 어두운 곳에서 숨쉬기 운동을 할 때만 기기를 써야 할 판이다.

2020년 12월 애플워치6 사용자가 기기 사용을 시작하자마자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제보한 사진 / IT조선 DB
2020년 12월 애플워치6 사용자가 기기 사용을 시작하자마자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제보한 사진 / IT조선 DB
그동안 애플이 나몰라라 대응을 이어간 것은 압도적 시장 점유율이 받쳐줬기 때문이다. 애플은 스마트워치 1세대 사업자로서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2021년 3분기 21.3%의 점유율로 1위(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를 차지했다. 2위 삼성전자(14.4%)와 격차가 상당하다. 지속된 논란에도 애플 팬의 지지는 굳건했고, 이는 애플이 배짱 장사를 하는 토대로 작용했다.

어느 기업이든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애플은 여전히 주력 제품 아이폰과 애플워치로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내세운 혁신성 효과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다. 자체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로 기기 생태계를 꾸려 사용자를 잡아둔 덕이다. 애플워치와 애플 사후관리에 화상을 입은 소비자가 다시는 애플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방관만 하는 회사의 태도는 적절치 않다.

스마트워치 시장의 변화가 감지된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샤오미, 어메이즈핏 등 하위 제조사의 점유율 상승이 잇따른다. 구글과 메타(구 페이스북)도 올해 스마트워치 시장 뛰어들 전망이다. 애플의 민낯을 본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독주체제가 깨질 수도 있다. 애플이 이제라도 시총 규모에 걸맞은 소비자 대응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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