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확진자 17만명이 현실화된 지금, 대한민국 공중보건의료는 코로나19 이외에 또다른 위협에 봉착했다. 바로 헌혈 부족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헌혈이 줄면서 혈액 보유량이 2.5일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연초 7.5일분이었던 혈액 보유량이 최근 2.5일분까지 급감했다. 이같은 문제는 오미크론이 확산하면서 헌혈의 집 방문자가 급감하고, 예정된 단체헌혈 마저 대거 취소되며 시작됐다.

통상 혈액 수급 수준은 혈액 보유량 5일분 이상이면 ‘적정’, 3일분 이상 5일분 미만이면 ‘관심’, 2일분 이상 3일분 미만이면 ‘주의’, 1일분 이상 2일분 미만이면 ‘경계’, 1일분 미만이면 ‘심각’ 단계로 분류된다. 즉 현시점의 2.5일분은 적정 단계인 5일분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대한적십자사 산하 지역혈액원 혈액 수급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전북혈액원은 8일 혈액 보유량이 2.9일분까지 떨어져 ‘주의’ 단계로 격상됐고, 대구경북혈액원의 경우 10일 혈액 보유량이 1.7일분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혈액 대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11월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혈액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대한적십자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혈액 보유량이 7.6일분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국내 코로나19 장기화와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해 또 다시 단체 헌혈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개별 시민들의 헌혈 참여도 크게 감소했다. 연도별 헌혈 건수도 2019년 279만1092건에서 2020년 261만1401건, 2021년 260만4437건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한적십자사는 꾸준히 헌혈 참여를 독려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 등을 이유로 헌혈에 참여하기가 꺼려진다는 여론은 여전하다.

최근 인크루트가 코로나19와 헌혈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성인 남·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8.1%가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헌혈을 하는 것이 망설여진다고 답했다.

더욱이 ‘수혈로 인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을까’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57.6%가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수혈이나 헌혈로 코로나19가 전파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잘못된 정보가 시민들 사이에 각인되면서 헌혈을 기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혈액을 통해 코로나19가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헌혈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전국 헌혈의집에 대한 지속, 반복적인 소독 활동을 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백신관련 괴담까지 돌면서 헌혈자 모집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 상에 ‘백신접종자의 혈액은 별도 관리된다’, ‘헌혈을 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된다’는 등 헌혈 관련 근거없는 괴담이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라도 완치 후 4주가 지나면 헌혈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이후에는 일정 기간 헌혈이 제한되는데 7일이 지난 이후부터는 헌혈이 가능하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헌혈부터 수혈까지 과정 중 코로나19 백신접종자와 미접종자의 혈액을 관리하는 절차는 동일하며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지 않는다"며 "코로나19는 혈액 매개 감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헌혈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상태가 유지된다면 혈액재고량이 위기수준까지 감소할 수 있고, 수혈이 필요한 긴급한 환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상황이 심각해 짐에 따라 대한적십자사는 비상대책상황반을 가동하고 전부, 공공기관, 군부대 등에 적극적인 단체헌혈 참여를 요청하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가 모자라 수술실에서 죽어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헌혈을 통해 얻은 혈액은 한명의 환자를 넘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필수 보건의료 요소 중 하나이다.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외출을 삼가는 행위는 좋으나,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혈의 집 방문을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본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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