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간 바이오업계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자본 시장에서는 속칭 ‘바이오’ 묻으면 뭐든 다 값이 뛴다는 소리까지 들려 오던 시기가 있었다.

대중이 만질수도 볼 수도 없는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잘 갖춰 놓으면 투자자들이 알아서 찾아와 미래가치에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혁신 기술만으로 상장이 가능해 자본시장 진출도 쉬웠다. 실제 기술특례 제도로 증시에 데뷔한 바이오벤처만 근 4년(2018~2021년)간 54개에 이른다.

기술수출도 호황이었다. 2020년에는 기술수출 규모가 11조595억원이었는데, 2년 새 24조대원로 퀀텀점프했다. 하지만 점점 낙관론의 기세는 점점 기울어 ‘K바이오 버블’이라는 악재로 바뀌었다. 시장은 불신의 늪에 빠지고 주가는 곤두박질치며, 대다수의 바이오벤처들이 자금난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악재의 징후는 분명 존재했다. 기술수출 잭팟으로 환호성을 지를때 기술을 다시 반환하는 사례도 9조7479억원에 달했다. 모두가 기술 계약금이 회사 소유가 될 줄 알았지만 실상은 단계적으로 돈을 받는 ‘마일스톤’이었을뿐 기업 자산이 아니었다는 걸 투자자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기업 대비 터무니없이 작은 바이오벤처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당연한’ 방식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는 후보물질 임상 하나에 최소 1000억~2000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다. 그만큼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신약개발은 어렵다.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신약 후보물질 임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개발 도중에 자금력을 갖춘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 등 다국적 제약사에 넘긴 뒤 일정액의 선계약금과 임상 성공 시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기술수출을 한다.

문제는 기술수출에 성공해도 수출된 후보물질이 임상 성공 후 신약으로 허가받는 일은 드물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초기 임상과 검증을 마친 뒤 수출한 신약 후보물질이어도 신약개발로 연결될 확률은 20~30% 수준에 그친다고 보고 있다.

기술수출된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70~80%는 임상 실패 등으로 중간에 반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술수출 건수마다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선계약금 정도에 계약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몇몇 기업들 사이에서 마치 자사의 기술이 글로벌 기업에 수출되면 앞으로 성공가도를 달릴일만 남았다는 자만심에 휩싸여, 기술 반환에 대한 책임과 준비를 소홀히하는 경향이 팽배해 졌다.

올해 1월부터 압타바이오는 미국 바이오벤처 호프바이오사이언스에서 '압타(Apta)-12'라는 췌장암 치료제 파이프라인 권리를 반환받았다. 이는 2015년 12월 호프바이오사이언스에 기술수출을 한 파이프라인이다.

지난해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사노피파스퇴르에 기술수출한 세포 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기술이 반환됐다. 메디톡스도 앨러간(현 애브비)에 기술수출한 액상형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한 권리가 반환돼 작년 9월 계약을 종료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이전한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기술을 반환받았다. 에이비엘바이오 역시 미국 트리거테라퓨틱스로부터 기술수출한 항암제 5개 관련 계약에 관한 해지를 통보받았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바이오기업 불신이 점점 상승하자 기술력만 있으면 상장이 가능하던 ‘자본시장 진출’ 마저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신라젠 상장폐지 위기와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등 도덕성에 위배된 사건들도 존재했지만, 최근 6개월간 코스피지수는 16.2% 하락했는데 KRX헬스케어지수는 35% 급락하는 등 유독 바이오분야의 악재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과거 바이오기업에 한없이 관대했던 벤처캐피털(VC)마저 최근 투자에 신중한 분위기다. 벤처캐피털은 비상장 회사에 투자해 기업공개(IPO)로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하는 식으로 경영활동을 지속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바이오 기업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투자금 회수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치료제를 개발하겠다며, 연일 포부를 밝히하던 제약사들이 개발 중단을 선언하는 등 대중들에게도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점이 바이오 투자 심리를 대폭 위축시켰다는 원인으로도 손꼽힌다.

이러한 임상 실패와 중단, 연이은 기술수출 반환 통보 등이 잇달아 터지자 K바이오 ‘거품론’마저 고개를 들며 얼어붙은 업계를 더욱 혹독하게 만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업계의 호황이 멈춘 것은 아쉽지만, 소수의 파이프라인이 터지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관례부터 탈피해야 시장이 더욱 성숙하게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판교에 사무실을 둔 바이오벤처들은 VC를 마치 제사장 모시듯이 대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투자자에 죽고사는 운명들이다"며 "문제는 이들이 자사의 기술을 너무 맹신해 모든 투자자들이 알아봐줄 것이고 글로벌 기업과 손만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바이오 호황을 빠르게 종결시킨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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