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의 입지가 위태롭다. 대만 미디어텍의 저가 공세로 엑시노스는 갤럭시 주요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삼성전자 MX사업부에서도 외면받는 처지가 됐다. 파운드리사업부가 낮은 수율 문제를 빠르게 개선하지 못한다면 모바일 AP 시장에서 엑시노스의 존재감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한다. 하나의 칩셋이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5G 통신칩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갤럭시 A53 5G / 삼성전자
갤럭시 A53 5G / 삼성전자
26일 전자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미디어텍은 삼성전자에 자사 프리미엄 AP인 ‘디멘시티 9000’의 공급을 확정했다. 디멘시티 9000이 탑재될 제품은 갤럭시A53의 상위 모델인 갤럭시A53s 프로로 알려졌다.

미디어텍은 자발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삼성전자 MX사업부의 마음을 흔들었다. 샤오미 등 다른 중국 고객사 대비 10%쯤 인하된 공급 단가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협상은 삼성전자와 미디어텍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다"라며 "주요 AP 고객이 중국에 한정됐던 미디어텍은 디멘시티 9000을 갤럭시 주력급 모델에 탑재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화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삼성전자는 원가 절감과 동시에 성능 이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멘시티 9000은 엑시노스 2200은 물론이고 스냅드래곤8 1세대보다 고성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디멘시티 9000은 AP 단계에서 하는 공개테스트에서 안드로이드 플래그십 단말기용 최강 AP 성능을 냈다. 애플의 최신 AP인 A15 바이오닉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안드로이드 진영 AP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이 제품은 TSMC의 최신 4나노 공정으로 생산된다.

삼성 프리미엄 모바일AP 엑시노스 2200 / 삼성전자
삼성 프리미엄 모바일AP 엑시노스 2200 / 삼성전자
갤럭시A 시리즈는 삼성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의 70%쯤을 차지하는 주력 제품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은 갤럭시A12다. 단일 모델 중 최초로 연간 출하량 5000만대를 돌파한 총 5180만대가 팔렸다.

엑시노스의 달라진 입지는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갤럭시 A12·갤럭시 A32 등 중저가 모델에 미디어텍 AP를 적용했고, A72와 A52 모델에는 스냅드래곤 제품을 탑재해왔다.

앞서 갤럭시노트 시리즈 단종으로 엑시노스 물량이 줄었고, 폴더블폰 Z시리즈 전체 제품에 스냅드래곤을 탑재했다. 엑시노스 패싱 상황이 발생했다. 2월 출시된 갤럭시S22 시리즈 역시 이전 시리즈 보다 엑시노스 탑재를 줄이고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늘렸다. 실제 삼성전자는 한국과 인도 출시 제품에도 엑시노스를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자업계에서는 향후 갤럭시 플래그십 시리즈에도 엑시노스의 자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특히 올해 하반기 출시될 갤럭시S22 FE에 디멘시티 9000이 적용될 가능성을 주목한다. FE 버전 최초로 기존 플래그십 갤럭시S보다 고성능을 갖추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2021년 4분기 모바일 AP 출하량 점유율에서 33%로 1위에 올랐다. 미디어텍 AP를 탑재한 삼성 갤럭시 A12와 A32가 미국에서 많이 판매된 덕이다. 퀄컴(30%)과 애플(21%), UNISOC(11%)이 뒤를 이었고, 삼성전자는 4%로 전년 동기 대비 3%포인트 하락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MX사업부는 퀄컴과 함께 파운드리사업부의 최대 고객사로, 스냅드래곤이나 디멘시티를 장착한 모델 출시 비중이 지금처럼 늘어날 경우 파운드리 사업 전략이 중대한 타격을 입는다"며 "발열과 수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엑시노스의 부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