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디지털헬스케어라는 단어에 비해 ‘디지털치료제(DTx)’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는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주목을 받고 있는 치료제다. 디지털 의료기기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적 근거를 기반으로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앱·게임·VR 등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일컫는다.

디지털치료제는 일반 의약품처럼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를 입증한 후 미국식품의약국(FDA) 등 보건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정식사용이 가능하다. 디지털치료제는 1세대 치료제인 저분자 화합물(알약이나 캡슐), 2세대 치료제인 생물제제(항체, 단백질, 세포)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되며, 경우에 따라 ‘4세대 신약’으로 부르기도 한다.

권희 라이프시맨틱스 이사 / 라이프시맨틱스
권희 라이프시맨틱스 이사 / 라이프시맨틱스
일반인에게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개념이지만,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2020년 370억달러(46억원)에서 2028년 1910억달러(236조원)로 성장이 예측될 정도로 유망한 의료 분야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4개 품목이 보건당국으로부터 ‘확증임상’을 허가 받고 현재 임상시험에 돌입한 상태다. 연내 ‘국산 1호’ 디지털치료제가 출연 역시 기대되고 있다. 이에 IT조선은 디지털치료제 개발 기업인 라이프시맨틱스의 권희 이사를 만나 국내 디지털치료제의 전망과 풀어야할 숙제 등을 집어봤다.

디지털의료 전문기업 라이프시맨틱스, 식약처로부터 연내 ‘레드필 숨튼’ 승인 목표

라이프시맨틱스는 국내 첫 개인 건강 데이터(PHR) 상용화 플랫폼인 ‘라이프레코드’를 기반으로
디지털치료제, 비대면 진료,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 분야에서는 ‘레드필 숨튼’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9월 식약처로부터 호흡 재활 분야 처방형 디지털치료제로 확증임상 계획을 승인받아 연내 승인 완료 및 내년 상용화를 계획 중이다.

권희 이사는 "아직 국내에 정식 허가받은 디지털치료제는 없지만 미국의 경우 2017년 페어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약물중독치료 앱 ‘리셋(reset)’이 FDA 승인을 받으며 시장이 형성된 이후, 미국과 유럽 등에서 다수의 제품이 출시됐다"며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이 2026년에 1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더욱 부각됐다. 코로나19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치료 시설 또한 축소된 상황에서, 디지털치료제를 통해 의학적 장애나 질병 등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필 숨튼은 호흡기 질환자가 집에서도 스스로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호흡재활 소프트웨어다. 개인 측정기기를 통해 활동량 및 산소포화도를 측정한 뒤 환자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리포트를 제공해 더욱 체계적인 재활을 가능하게 한다.

올해 한개 이상의 품목이 국내 보건당국으로부터 허가 받을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권 이사는 레드필 숨튼 역시 빠른 시일 내 상용화가 가능하다 자신했다.

권 이사는 "레드필 숨튼은 의약품 기준 임상3상에 해당하는 단계를 진행중으로, 현재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및 폐암 등 호흡기 질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있다"며 "숨튼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증된다면, 호흡기 재활을 위한 국내 첫 번째 디지털치료제가 될 전망이다"고 전했다.

국내 디지털치료제 시장, 수가 산정 및 유통방식 구축 필요

디지털치료제에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치료제는 기존 의약품 대비 비용과 부작용, 개발 기간 등 투자대비 효율성이 높아 ‘슈퍼 치료제’로 여겨지는 반면, 사용성이나 수익부분에 대한 한계점이 존재해 의약품 반열에 못 오를 것이라는 등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일반 의약품의 경우 환자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약제 코팅 기술부터 제형, 크기 등 끊임없는 연구를 지속해야 하는데, 디지털치료제도 사용자 경험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고도화 작업이 동반된다. 이는 의약품과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개발 시간과 저렴한 비용이라는 장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단점이다.

치료제 처방에 따른 수가 문제도 존재한다. 아직 한국 의료체계에서 수가 산정이나 유통방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2020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원활한 심사방안을 모색하는 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경제성 평가 및 지불 방식을 지속 연구 중이지만, 아직까지도 규제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권 이사는 "미국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HCPCS(힙픽스)를 통해 보험 코드를 적용한다"며 "HCPCS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진료행위 코드와 유사한 것으로, 미국 건강보험 당국에서 디지털 치료제 사용을 정상적인 의료행위로 인정했다 보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제의 실질적인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정 수가 체계를 통한 의료기관 공급이 필수적이다. 최근 북미를 기점으로 독일 등의 국가에서 다양한 디지털 치료제가 규제기관으로부터 인허가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공보험 중심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최근 디지털 치료제를 가치 중심 평가로 산정해 수가를 신설했다. 안정성, 기능, 질, 보안 등 일정 조건 만족 시 출시 자격을 선제 부여하고, 이후 12개월에 걸친 임상 결과 평가 기준을 통과하면 연간 최대 2000유로(270만원)의 수가를 지급한다.

환자가 직접 체험하는 방식 필요…규제산업 뒷받침 되야

디지털 치료제를 통해 환자의 질환 모니터링에 도움이 됐거나, 의료진과의 소통이 원활해졌다면,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권 이사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 제고와 접근성 개선을 위해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권 이사는 "디지털치료제는 사용법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이 있어야 하며,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등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당국은 현장에서 교육과 모니터링을 누가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전문약사가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사용자 교육과 모니터링 등을 누가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라이프시맨틱스 역시 디지털치료제 상용화를 위해 정부와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심평원은 지난해 말 해외 사례와 한국 디지털 치료기기 관련 제도를 정리한 ‘디지털 치료기기 개념과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 검토’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는데, 후속 연구에 라이프시맨틱스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 이사는 "레드필 숨튼의 수가뿐 아니라 디지털 치료기기 전반에 대한 수가 제도를 논의중이다"며 "식약처가 지난해 불면증, 알코올 중독장애, 니코틴 중독장애 디지털치료기기를 위한 임상시험 가이드라인(평가기준)을 마련한데, 이어 올해 우울증, 공황장애 디지털치료기기의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등 디지털치료제 상용화 작업이 한창이다"고 전했다.

환자들이 디지털치료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구분 작업이 요구된다. 폭넓은 의학 범위 안에서 체계적으로 그룹화돼 있어야 의료진이 환자 상태에 따라 효율적으로 처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권 이사는 디지털치료제가 본격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산업이 뒷받침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효과는 어느 정도며, 부작용은 어떠한지 임상을 통해 검증해 급여를 등재해야 한다"며 "매단계마다 복잡한 절차와 의무사항이 있는데 디지털 치료기기는 아직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급여 등재된 사례가 없어 매단계마다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해 디지털치료제의 여러 효과에 대한 가치가 평가절하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고, B2C 서비스인 만큼 일정부분은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한 시장경쟁이 일어나야 한다"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디지털치료기기가 활발히 발굴·개발돼 라이프시맨틱스가 개발 선도 기업으로서 여러 노하우들을 기업들에게 나누며 시장을 이끌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