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째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한빗코가 경영 정상화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한빗코 운영사인 플루토스디에스를 인수한 티사이언티픽이 유상 증자에 추가로 참여키로 하면서 자본 확충 기대감이 커졌다. 오랜 숙원이었던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좌) 발급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전망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인 티사이언티픽은 플루토스디에스의 3자 배정 유증에 참여, 100억원을 출자한다. 이에 티사이언티픽의 한빗코 지분율은 68.6%로 높아졌다. 티사이언티픽은 지난달 241억원 규모로 플루투스디에스 구주매입을 단행, 지분 60.4%를 확보한 바 있다. 오는 16일 잔금을 모두 치르면 한빗코 최대주주가 된다.

한빗코 운영사인 플루토스디에스의 2대주주인 김성아 ·안해균 공동대표/한빗코
한빗코 운영사인 플루토스디에스의 2대주주인 김성아 ·안해균 공동대표/한빗코
완전자본잠식 한빗코, 자금수혈로 신사업 동력 확보

한빗코는 이번 유상증자로 숨통이 트이게 됐다. 현금 수혈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는 동시에 신사업 추진 동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한빗코는 수 년간 순손실을 기록하며 고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한빗코의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3억7300만원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4억7500만원 대비 64.8% 감소한 1억6700만원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호실적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기간 순손실 규모는 14억5400만원에서 22억7600만원으로 56.5% 늘었다.

2018년 3월 서비스 오픈 이후 원화마켓을 열지 않고 비트코인(BTC) 마켓만 개설한 게 실적 부진과 자본잠식으로 이어졌다. 상장 코인 개수도 28개에 불과해 수수료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벌집계좌(집금계좌) 사용을 금지하면서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보수적인 사업 정책을 편 결과다.

6일 오전 10시 기준 글로벌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한빗코는 거래량 기준 글로벌 180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빗썸(18위), 코인원(23위), 업비트(31위), 코빗(33위), 프로비트(85위)에 이어 6위다. 이어 지닥(200위), 고팍스(204위) 순이다.

자본규모가 늘면서 실명계좌 발급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재무 건전성은 실명계좌 발급 위험평가 대상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은행연합회가 내놓은 ‘가상자산사업자 자금세탁 위험평가 방안’에 따르면 사업자의 재무 현황은 고유 위험 중 ‘사업위험’ 평가 항목에 해당한다.

한빗코는 고팍스 다음으로 실명계좌 제휴 가능성이 높은 사업자로 꼽힌다. 실제 그동안 케이뱅크, 전남은행 등과 제휴 계약을 논의했지만 막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현재 국내 은행들과 실명계좌 제휴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화마켓 운용데이터 확보 & 티사이언티픽 순손실 전환은 숙제

다만 한빗코가 원화마켓 운영 이력이 없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로 거론된다.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 관계자는 "은행은 원화마켓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명계좌를 연동한다"며 "한빗코는 원화마켓 운영 데이터가 없어 어떻게 자금세탁을 방어했는 지 입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시장 신뢰도가 높지만, 은행과 논의 과정에서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 자금세탁 등 범죄를 방지한 이력이나 관련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을 충분히 어필해야 실명계좌 발급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티사이언티픽이 순손실을 기록, 적자로 전환한 상황은 애로 사항으로 꼽힌다. 모회사의 자금 상황도 재무건전성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어느 정도 ‘급’이 있는 기업이 투자 검증을 한 것인지의 판단도 중요하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티사이언티픽의 매출은 101억원, 영업이익은 10억원에 그쳤다. 관계기업 투자 손실과 법인세 등으로 비용이 늘면서 순손실 32억원을 기록했다.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이 216억원으로 여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티사이언티픽은 빗썸의 운영사인 빗썸코리아 주식 8.2%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 지분 가치만 2126억원이다. 지난해 티사이언티픽은 빗썸코리아 보유주식 1%를 매각해 360억원을 확보, 블록체인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안해균 한빗코 대표는 "티사이언티픽이 유승재 전 네이버 마케팅 센터장을 포함해 IT분야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블록체인 사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재무건전성을 기반으로 사업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