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통령이 빼먹지 않고 강조하는 대표적인 산업 정책 중 하나다. 반도체 업계는 지속 성장을 위한 인력난 해소가 절실하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 만큼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의 요구는 번번히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고급 인력 양성 정책에 반도체를 포함시켰지만, 정부의 지원보다 기업 스스로 인재를 육성하라는 기조가 강했다.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정부 자금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박 정부의 임기가 끝날 무렵이던 2017년 3월 말 뒤늦게 ‘시스템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4년간 차량용 반도체 석사 과정 신설 등 방법으로 130억원을 투입해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 288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 효과는 미미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5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려 10년간 반도체 인력 3만6000명을 양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올해 1월 발표된 ‘반도체특별법’에는 주요 기업들이 요구한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를 균형 발전시킨다는 명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어정쩡한 지원 정책을 펼친 한국과 달리 대만은 반도체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만은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21년 5월 ‘국가 중점 영역 산학 협력 및 인재 육성 혁신 조례’를 제정했다. 그 해 9월 교육부는 대만 내 4개 국립대에 반도체 관련 대학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총 400명의 학생이 2022년부터 반도체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한국과 대만은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고 산업 인력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대만은 국가전략 산업인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더 체계적이고 법적 근거를 갖고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021년 12월 반도체 관련 대학원인 '중점 과학기술 연구학원' 개원식에서 "대만의 각 대학이 방학 기간을 조정해 연중무휴로 인재를 육성하는 것도 고려하면서, 신입생을 1년에 1번이 아닌 6개월마다 1번씩 뽑고 외국의 가장 우수한 학생도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반도체 업계는 2022년부터 2031년까지 한국에 총 3만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나라 반도체학과 졸업생은 연간 650명에 불과하다. 반도체 산업의 10년 뒤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 대만처럼 규제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소재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있어 정원을 더 늘릴 수 없다. 반도체 인력 양성의 토대를 마련하려면 관련 학과 정원을 예외로 넣어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과감한 인센티브와 특성화 대학 및 학과의 정원 확대를 약속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각별히 반도체 산업현장을 챙겼던 만큼, 인력 양성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정권에서 풀지 못한 숙제를 앞으로의 5년 동안 풀어내길 기대해본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