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감에 따라 차기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인수합병 작업에 돌입했다. 코로나19에 집중돼있던 의약품 생태계를 확장시켜 새로운 분야의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경영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인수합병 / 픽사베이
인수합병 / 픽사베이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화이자가 편두통 치료제 개발사 ‘바이오헤이븐 파마슈티컬’의 이사진을 만난 뒤 만장일치로 인수합병(M&A)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116억달러(14조8000억원)으로, 화이자는 2016년 항암제 개발사 메디베이션을 15조원에 사들인 뒤 5년 만에 성사시킨 ‘빅딜’이다.

화이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전세계 제약사 중 가장 큰 매출 성장을 보여왔다. 화이자는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코미나티(Comirnaty)’를 시작으로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Paxlovid)’ 등 코로나 최대 수혜기업으로 성장했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화이자도 향후 미래 전망에 대한 고민은 존재한다. 11개의 약물이 2030년 안에 특허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특히 블록버스터 의약품(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한 약물)인 트란스시레틴 아밀로이드증(ATTR) 치료제 ‘빈다켈(성분명 타파미디스)’와 ‘빈다맥스(성분명 타마미디스)’ 그리고 야누스키나제(JAK) 억제제인 ‘젤잔즈(성분명 토파시티닙)’ 등이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에 화이자는 코로나 이후 미래 먹거리를 찾기위한 인수합병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67억달러(8조5000억원)에 아레나 파마슈티칼스를 인수, 염증성 질환 치료물질인 ‘에트라시모드’를 확보했다. 올해 4월에는 항바이러스 개발사인 ‘리바이럴’을 인수해 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와 숙주 세포 융합을 차단하는 ‘시수나토비르’를 보유하게 됐다.

최근 화이자가 인수한 바이오헤이븐은 경구용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수용체 길항체인 ‘리메게판트(Rimegepant)’을 개발한 미국 바이오텍이다. 앞서 화이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이외 지역에서 리메게판트와 제베게판트의 상업화를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주당 173달러에 바이오헤이븐 보통주 2.6%를 인수한 바 있다.

이번 계약으로 화이자는 리메게판트의 모든 권리를 갖게 됐다. 최근 미국에 승인 신청이 제출된 동일 계열의 비강 스프레이 ‘자베페간트’와 함께 동일한 단백질 표적을 차단하는 전임상 단계 치료제 5개도 확보했다.

리메게판트는 편두통 급성 치료 및 일시적 예방 치료제로, 미국에서 ‘너텍 ODT(NURTEC ODT)’, 유럽에서는 ‘바이두라(Vydura)’라는 상표명으로 승인받았다. 자베게판트는 급성 편두통 치료용 비강 내 스프레이 및 만성 편두통 예방용 경구용 연질캡슐로 개발 중이다.

업계는 화이자가 이미 경구용 CGRP 약물이 전체 편두통 치료제 시장의 10%만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닉 라구노비치(Nick Lagunowich) 화이자 내과학 글로벌 사장은 "이미 미국 내에서 동일계열 처방 1위인 너텍과 더불어 바이오헤이븐 CGRP 파이프라인을 통해 전세계 편두통 환자들에게 희망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해당 포트폴리오가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지난달 20억달러(2조6000억원)에 항암제 개발 기업인 ‘시에라 온콜로지’를 인수했다. 그간 GSK는 항암제 분야에 확장을 꿈꿔왔고, 결국 이번 인수로 희귀암 개발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

이로써 GSK는 혈액암의 한 종류인 골수섬유증 치료인 JAK 억제제 ‘모멜로티닙’을 얻게 됐다. 현재 모멜로티닙은 임상3상이 중이다.

GSK는 올해안에 일반약과 건기식 등을 담당하는 GSK컨슈머헬스케어를 분사할 것으로 예측된 가운데, 이번에 희귀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전반적인 사업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모멜로티닙은 2013년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YM 바이오사이언스(BioSciences)로부터 사들였고, 3상에서 기존 JAK 억제제 ‘룩소리티닙’ 대비 우수한 결과를 얻지 못해 2018년 시에라에 매각했다.

JAK 억제제인 모멜로티닙은 골수섬유증 환자에게 발생되는 중증 빈혈 등의 발생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SK에 따르면 모멜로티닙의 3상임상 결과 긍정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올해 유럽의약품청(EMA) 측에 허가신청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GSK는 이미 다발골수종 치료제인 BCMA 표적 항체 ‘블렌렙(성분명 벨란타맙 마포도틴)’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시에라 인수로 GSK는 혈액암 치료제 라인 강화가 가능해졌다.

노바티스는 영국 유전자 치료제 개발 회사를 15억달러(2조원)에 인수하면서 안과 유전자 치료 및 광유전학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할 방침이다. 해당 인수로 노바티스는 실명의 주요 원인인 지도형 위축(geographic atrophy) 치료를 혁신할 수 있는 일회성 유전자 치료제 ‘GT005’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게 됐다.

지도형 위축은 진행된 형태의 건성 연령 관련 황반변성(AMD)으로, 아직까지 승인된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GT005는 AAV2 기반 단회 투여 유전자 요법으로 설계됐으며, 망막 아래에 전달된다. CFI 단백질 생산을 증가시켜 면역체계의 일부인 과민성 보체 시스템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만들어졌다.

보체 과잉 활성화는 건강한 조직을 손상시키는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AMD 진행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CFI 단백질은 보체 시스템의 활동을 조절한다. CFI 생산을 늘리면 염증을 줄일 수 있고, 시력을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노피 역시 면역항암제를 확보하기 위해 ‘아뮤닉스’를 10억달러(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아뮤닉스는 HER2를 표적으로 하는 T세포 결합체(TEC)로 면역반응을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AMX-818’을 개발 중이다.

TCE는 ‘종양 특이 MHC·펩타이드’의 T세포 인식 요구를 우회해 종양 항원(TAA)을 발현하는 세포에 대해 독성을 재지정하는 방식으로 암을 사멸시킨다. 즉, AMX-818는 표적 항원을 발현하는 건강한 조직에 대한 독성을 완화해 기존 TCE와 관련된 표적 및 종양 외 독성을 극복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사노피는 그동안 항암제를 비롯한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사업을 강화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대적인 인수합병 작업에 돌입하는 이유는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개발을 단번에 해결하고 자사의 파이프라인을 성공적으로 강화하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며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다양한 전략을 구상하고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들의 이러한 행보는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 격차를 실감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