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은 한국 콘텐츠 시장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긍정적으로는 좋은 콘텐츠를 세계 각국에 동시 스트리밍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여기에 안정적인 제작 마진 보장과 높은 제작비 투입이 고퀼리티 콘텐츠를 제작 능력과 연결된다는 점을 증명했다. 지난해 선보인 ‘오징어게임'이 그 증거다. 오징어게임은 세계인의 마음을 흔든 최고의 K콘텐츠로 등극했다.

반면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비용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IP)의 모든 권리는 가져가는 계약 방식을 고수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제작사나 창작자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재상영분배금'을 보장하지 않는 구조도 문제로도 연결된다.

특히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등장은 한국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제작비 원가를 높이는 역할을 했고 제작 환경의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와 방송사 관계가 틀어졌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주요 제작사의 협상력은 높아졌지만, 방송사는 드라마 제작을 꺼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IT조선은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한 이후 드라마 시장 전반의 변화를 연구한 유건식 KBS공영미디어 연구소장을 만나 넷플릭스 등장이 만들어낸 한국 드라마 시장의 변화를 짚어봤다. 그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던 2016년 즈음 KBS아메리카 대표를 역임했다. 그 동안 KBS 드라마 ‘굿닥터’를 미국ABC 방송이 리메이크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 정규시즌제로 리메이크된 최초 사례다.

유건식 KBS공영미디어 연구소장 / 이은주 기자
유건식 KBS공영미디어 연구소장 / 이은주 기자
ㅡ드라마 콘텐츠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전 과정에 참여하면서, 넷플릭스 등장 이후의 적잖은 시장 변화를 직접 체감했을 것 같다.

"처음 넷플릭스를 접한건 UCLA에서 연수를 할 때다. 당시 영화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매번 DVD를 사기 힘들어 대체제로서 활용했다. 이후 잊고 살다가 2015년 KBS아메리카 대표로 지내면서 넷플릭스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게 됐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체험한 건 그 다음이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 돌아온 뒤, 한국 드라마 시장에 본격 진출한 넷플릭스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깨닳았다. 좋은 기획안은 넷플릭스에 먼저 제안되고 KBS는 돌아, 돌아 마지막에 오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 시장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ㅡ그렇게 책을 출간한 것인가?

"넷플릭스를 주제로 세 권의 책을 썼다. 2019년에는 ‘넷플릭소노믹스’를 냈고 2020년에는 ‘넷플릭스효과’를 번역했다. 2021년 11월에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장을 바꾸다’를 썼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장을 바꾸다’는 넷플릭스 창업 과정부터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회사 내부에서 공유하는 보고서로 기획됐다가 향후 방송문화진흥원의 저술지원을 받아 책으로 발전시켰다.

넷플릭스가 어떤 비즈니스 전략을 갖고 성장했는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해 정리했다. 현장에서 넷플릭스와 함께 일해온 작가나 제작사 대표 등의 목소리를 신중히 들었다."

ㅡ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들어온 뒤 그간 한국 시장 규모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2015년쯤에는 방송국에서 ‘시대극(1900년~1960년대쯤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을 만들기 힘들었다. 사극은 드라마 세트장이 많아 어렵지 않은 반면 시대극은 세트가 없어 새로 지어야 했다. 제작비가 당연히 많이 들어간다. 방송국으로서는 부담스럽다. 그만큼 광고가 많아야만 제작비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로서도 스스로 수익사업을 하거나 협찬을 통해 해결해야 했다.

반면 넷플릭스는 제작사에 충분한 제작비를 지원한다. 제작비의 10%쯤은 수익으로 보장한다. 제작사로서는 흥행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안지 않아도 된다. 결국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도전하기 어려웠던 규모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게 된 배경이다."

ㅡ긍정적인 변화인 듯 하다.

"맞다. 넷플릭스는 신인이라도 기획만 괜찮다면 기회를 준다. 편견 없이 추진해보는 장을 만든다. 반면 한국 방송사는 신인작가나 신인배우 기용을 꺼려한다. 이력과 레퍼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일례로 방송 결과 소위 대박이 났던 ‘성균관스캔들'의 경우 주인공 4명이 모두 신인이었다. 기획 초기에는 내부에서 부정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드라마 구성도 좀더 자유로워졌다. 방송사 드라마는 16부작, 20부작으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에 맞춰야만 한다. 광고를 팔아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10부작 미만 드라마는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광고주가 긴 호흡의 시리즈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회당 시간도 일정하게 맞춰야 한다. 방송사는 각 프로그램별로 편성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달랐다. 스토리에 맞게 편성시간이나 회차를 모두 조절할 수 있다. 또 세계에 동시에 콘텐츠를 공개할 수 있는 플랫폼 영향력이 있다.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에서 흥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오징어게임이 대표적이었다."

ㅡ드라마 제작비를 상승시켰다는 말도 나온다.

"맞다. 넷플릭스가 국내 드라마 제작비 상승의 ‘물꼬'를 터줬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이는 한국 드라마 환경을 생각하면 현실과는 멀다.

미국에서는 드라마를 제작할 때 회당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한국은 회당 수억원에 불과하다. 즉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 시장에 투입하는 제작비는 굉장히 저렴한 수준인 것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오리니널 ‘스위트홈'은 회당 30억원쯤 제작비가 들었다. 이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는 제작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 것이다. 한국 방송사나 OTT는 시장 규모상 회당 30억원 제작비를 투입하면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미국에 비해 매우 저렴하게 드라마를 만든 셈이 된다.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ㅡ회당 30억원이면, 10회로 치면 300억원이다. 이 정도 제작비를 투입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한국 광고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 그 정도 제작비를 투입하려면 방송사는 그 이상의 광고수익을 발생시켜야 한다. 한국 광고시장 규모 자체가 그정도 규모가 되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로는 그 만큼의 광고를 발생시키기 어렵다. 광고 수익은 많아야 회당 5-6억 정도다. 결국 나머지 25억원은 무언가로 메꿔야 하는 셈이다. 어렵다.

넷플릭스는 제작비 원가의 기준선을 올라가도록 했다. 배우, 작가, 감독에 지급되는 비용이 올랐다. 여기에 작가와 감독들은 넷플릭스를 이유로 방송사에 더 높은 금액을 달라고 요구한다."

ㅡ제작사는 당연히 넷플릭스를 선택할 듯하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 있어서 방송사가 ‘갑'이 아닌 시대가 온듯하다.

"과거 지상파3사가 중심일 때는 이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제작사가 쫓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제작사 선택권이 훨씬 넓어졌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여러 OTT가 생기면서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배우부터 감독, 작가, 스태프의 ‘몸값'이 모두다 올랐다. 더이상 방송사는 갑이 아닌 셈이다."

ㅡ제작사는 선택지가 늘어 긍정적이지 않나? 넷플릭스는 (저작권을 가져가는 대신) 안전마진도 10-20%쯤 보장하는 걸로 알고 있다.

"반만 맞는 듯 하다. 모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넷플릭스가 그정도의 안전마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제작사 능력과 협상력에 따라 갈린다. 제작 역량이 있는 제작사가 아닌한 10% 이상 마진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제작사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배우부터 작가, 음악, 스크립터, 편집, 감독 등 제작에 필요한 요소비용이 전반적으로 올랐다. 비용이 올랐는데 모든 제작사가 넷플릭스에 작품을 공급할 순 없다.
결국 제작사도 양극화됐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또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제작사의 품질관리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자막이나 화질 등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 일정 수준으로 콘텐츠 품질이 떨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겪는 어려움이 있다."

ㅡ넷플릭스에 국내 시장이 잠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송사 외에도 토종 OTT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OTT를 지원해야 한다고 보나?

"현재 주요 OTT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입자가 늘어야 만회할 수 있는데 가입자가 지금의 2배라도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인구수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OTT 세액공제 이야기나 투자 지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정당한 명분을 확보될 때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OTT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다면 일자리 창출, 글로벌 진출 등을 이유로 지원이 가능하다. 번역 역시 상당히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역인데, 지원이 가능할 듯 싶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OTT 사업자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외의 지원은 어렵지 않나 싶다."

ㅡ지상파도 드라마 제작비를 지원받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일자리 창출과 콘텐츠 인력 양성 목적에서 이뤄진다. 신인 감독이나, 신인배우가 참여하는 단막극은 방송사 입장에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아 지원된다."

ㅡ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는 식의 계약이 이뤄진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다만 이는 넷플릭스만의 시스템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형 제작 스튜디오가 주도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핸들링한다. 저작권도 자신들이 갖는다. 대신 그렇게 제작된 드라마가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을 냈을때 의무적으로 작가, 배우, 감독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계약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를 재상영분배금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이 넷플릭스에 있기 때문에, 흥행한 작품의 다음 시즌을 제작할 권리도 넷플릭스가 갖는다. 한류의 돌풍을 일으킨 김은희 작가의 ‘킹덤' 저작권도 넷플릭스가 갖고 있다. 아무리 작가가 유명하더라도 넷플릭스가 다른 제작사에 작품을 진행시키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IP저작권을 플랫폼이 모두 쥐는 것의 무서운 점이다."

ㅡ방송사는 다른가? 방송사가 제작사와 계약할 때 저작권은 누가 가져가나?

"방송사도 물론 비슷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여러 형태 중 하나다. 제작사에 선택권을 준다. 넷플릭스는 많은 경우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ㅡ앞서 넷플릭스가 ‘재상영분배금’을 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급하나?

"미국의 경우만 그렇다. 감독과 배우, 작가 등이 속한 노조가 넷플릭스가 속한 제작자 협회와 협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단합력과 협상력은 매우 쎄다. 양측의 합의에 따라 넷플릭스에서 콘텐츠가 서비스되면 추가 보상을 계속 지급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ㅡ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 블록버스터급 드라마 탄생 기회를 늘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국내 방송사나 OTT는 자본력 부족으로 제작환경이 악화될 듯하다.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맞다. 현재의 방송국 수익 구조는 흑자를 위해서라면 드라마를 만들면 안된다. 결국 지금처럼 제작비가 늘기만 하면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방송사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한류를 만들어내는 동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나치게 늘어난 제작비를 개선해야 한다. 스타 작가나 배우에게 지급되는 출연료 정산 시점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는 이들에게 선금을 주고 남은 비용으로 제작을 한다. 그러다보니 투자 여력이 낮아진다. 이같은 구조를 수익이 난 후에 함께 배분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 나가야 한다."

ㅡ국가는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시장 규모에 비해 제작비가 과도하게 올라간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편파적으로 특정 제작사나 특정 OTT를 지원하는 건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앞서 말했듯 과도한 배우의 출연료 정산 시점을 추후로 미루도록 견인하는 가이드라인 등이 필요할 듯 하다. 또 제작사의 투명한 정산 정보 공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