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는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 필수 도구다. 국가 과학기술의 경쟁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슈퍼컴퓨터의 역할이 확장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기에 신제품과 신약개발, 자율주행, 안보 등 슈퍼컴퓨터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슈퍼컴퓨터 경쟁이 정보기술(IT) 업체 간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는 배경이다. 계속되는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세계화 흐름이 위협받는 시점에 슈퍼컴 기술의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들의 노력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슈퍼컴 전문 시장조사기관 하이퍼리온 리서치(Hyperion Research)의 수석보좌관(Senior Advisor) 스티브 콘웨이(Steve Conway)가 최근 슈퍼컴 전문 언론사 HPC와이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던 주요 국가의 슈퍼컴퓨팅 사업과 동향이 주제였다.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콘웨이는 HPC 및 IT 업계에서 25년차 베테랑으로 꼽힌다. HPC 사용자 포럼 운영 위원회와 ISC 빅데이터 및 ISC 클라우드 연례 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국 정부 기관 및 유럽 위원회를 위한 HPC 연구와 고성능 컴퓨팅의 산업 응용을 포함한 HPC 관련 책을 내고 강연하고 있다. 게재를 허락한 스티브 콘웨이에게 감사드린다.

ㅡ 국가별로 독자 슈퍼컴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가속화 되고 있는 이유는?

"각국 정부는 슈퍼컴이 첨단연구에 필수 요소라는 것을 오랫동안 인식했다. 최근 슈퍼컴 기술 우위가 연구개발을 넘어 경제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관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 중국 및 유럽연합 등 국가는 이런 핵심기술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한다. 슈퍼컴에서 자주력을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인 기술 및 공급망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ㅡ 각국의 자주력 확보를 위한 주요 슈퍼컴 사업과 그 의미를 설명해달라.

"중국, 유럽연합, 일본의 공통분모는 산업표준에 기반한 독자적 CPU 등 반도체 칩의 개발이다. 이들은 자국의 기업이 이를 활용한 슈퍼컴 시스템을 개발 판매해 국내 및 세계 시장을 점유할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개발한 CPU와 가속기를 이용해 세계 최초 엑사플롭스(ExaFLOPS, 1초에 100경번의 연산을 수행)급 컴퓨터를 구축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반면 반도체 제조 시설은 1~2세대 뒤쳐져 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반도체의 70%를 2025년까지 자급하겠다는 ‘Made in China 2025’사업은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통제 강화로 중국의 반도체 자급은 아직도 요원하다.

유럽연합도 슈퍼컴 제조와 활용에 있어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목표에 커다란 진보를 이뤘다. 유로HPC 사업을 통해 유럽 20여개국이 연합, 슈퍼컴을 개발했다. 엑사플롭스급 컴퓨터의 전단계인 프리(Pre)-엑사플롭스급 시스템을 8개나 구축했다. 또한 ETP4HPC 및 EPI (European Processor Initiative) 사업을 통해 유럽 독자기술 확보에 커다란 전기를 이루었다. 슈퍼컴 활용에 있어서도 중소기업 프로그램 및 전문센터를 구축해서 그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모든 기술을 자체 확보하지 않고 다른 국가와 협력해 추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벡터형 아키텍쳐가 슈퍼컴을 주도했던 2000년대 초까지 일본은 미국과 함께 슈퍼컴 기술을 선도했다. 2002년 세계 1위로 등장해 2년동안 왕좌를 지킨 NEC의 어쓰 시뮬레이터(Earth Simulator)는 이러한 일본 기술을 대표한다. 하지만 슈퍼컴퓨터가 클러스터형 아키텍처로 변화하는 흐름에 뒤떨어지면서 기술적인 우위와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잃게 됐다. 최근 ARM CPU를 탑재한 세계 1위 후가쿠(Fugaku) 시스템을 개발 구축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높여가고 있다."

ㅡ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슈퍼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러시아 정부는 슈퍼컴 중요성을 인지하지만 투자 부족으로 독자 기술 확보는 미흡하다. 현재 톱500 슈퍼컴 목록에 4개의 러시아 시스템이 등재됐지만 AMD,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 침공으로 AMD, 인텔,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 외에도 TSMC, 글로벌 파운드리 등 반도체 제조 시설을 활용하는 것도 차단됐다. 자체 스파크(SPARC) 기술에 기반한 CPU를 개발했지만 단기간에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된다."

ㅡ 미국은 탈 세계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미국은 60년대부터 국가안보 등 목적으로 독자 슈퍼컴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반도체의 88%가 해외에서 생산된다. 최근의 탈 세계화 흐름에 맞춰 독자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21 CHIPS for America’ 법안 등 노력을 통해 TSMC 및 삼성전자의 반도체 펩의 미국 구축을 유인하고 있다."

ㅡ 완전히 독자적인 국가 슈퍼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가능할까?

"가까운 장래에 한 국가가 완전히 독자적인 슈퍼컴 생태계를 구축하는 건 어려울 전망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생산이 독자 능력의 상징이지만, 대부분 국가는 TSMC 및 삼성전자의 펩 시설, ASML의 노광장비, 중국의 리튬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ㅡ 경제규모가 작은 다른 국가는 어떤 전략을 택하고 있나?

"글로벌 슈퍼컴 연구 개발 흐름 내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확한 날씨 예측, 안전한 자동차 개발,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발굴 등은 특정한 나라가 아닌 다수 나라에 공통적인 문제다.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이 슈퍼컴을 활용할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유럽연합은 33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EuroCC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RIKEN)도 다른 나라에서 일본의 슈퍼컴을 활용하는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ㅡ마지막으로 정리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혁신과 경쟁을 가속화시켜서 사용자에 보다 많은 기회를 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지역적 공급망을 강화하는 재편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문제가 발행할수 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노력이 국가 간 협력을 저해하는 것 보다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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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소장은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했고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사단법인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저널오브컴퓨테이셔널싸이언스(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는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KAUST) 슈퍼컴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