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처방이 필요한 독감치료제가 어린이집에 배포되면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의약품 유통 규제가 더욱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약사회를 비롯해 의약품을 배포한 코오롱제약까지 사태 수습에 나선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본격적인 사태 파악에 나서면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독감치료제 ‘코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 / 코오롱제약
독감치료제 ‘코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 / 코오롱제약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제천시에 위치한 어린이집 33곳에 코오롱제약 전문의약품인 ‘코미플루’가 무상으로 배포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코오롱제약이 올해 4월 국내복지단체인 한국사랑나눔공동체에 해외기부를 목적으로 사용기간 8월까지인 코미플루를 1만5000개 기부한 바 있는데, 이중 790개가 종합사회복지관에 배부됐다.

복지관은 다시 어린이집원장협의회에 코미플루를 전달했고, 협의회는 이달 초 제천시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자율 신청 형식으로 코미플루 배부 안내를 공지, 이를 신청한 어린이집 33곳에 해당 의약품들이 무상 배포된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코미플루가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데다 소아·청소년 환자에서 경련과 섬망과 같은 신경정신계 이상반응이 보고된 의약품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2018년 10대 청소년이 추락사하는 부작용 의심사례에 따라 복용 후 2일간 보호자 등은 소아, 청소년이 혼자 있지 않도록 하라는 안전성 서한이 배포되기도 했다.

몇몇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차례로 보도되자 대한약사회는 해당 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후 관련 복지단체에 정확한 배포처를 확인하고 있다. 더불어 약사회는 제약사와 기부단체, 어린이집 등을 대상으로 의약품 유통 정황을 파악해 법위반 행위가 발견되는 즉시 고발 조치를 감행하겠다 밝혔다.

또 기부의약품으로 사용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약물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제약사들의 보이기식 기부문화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 약사 등 전문가에 의해 관리돼야 하는 의약품 기부에 대한 개선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식약처는 해당건에 대한 적정성 여부와 추가적인 조치 필요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약사와 기부단체 간에 의약품 유통 행위가 약사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며 "유관기관들이 행한 유권해석 사례 등을 토대로 관련 기부의 적절성을 검토 중에 있어 추후 내용이 정리되는 대로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업계 내에서는 최근 식약처가 날을 세우고 있는 ‘보툴리눔 톡신’ 간접수출 규제와 관련된 논란이 이번 사건으로 전문의약품에 확대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코미플루가 해외기부 목적으로 유통 중인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인 점을 감안하면 의약품 해외 유통망에 구멍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식약처가 최근 지난해부터 업계와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보툴리눔 톡신 간접수출 규제의 잣대를 일반 제약사들이 생산하는 전문의약품으로 확대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해당 사건이 대금 결제 등 수익성이 발생하는 유통은 아니지만 그간 식약처가 눈여겨 지켜본 해외 수출 의약품에 대한 통제·관리의 부실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업계 전체로 전문의약품의 기부 행위 과정이 재검토 되면서 유사한 사례가 발견될 수도 있다.

깊은 침체기에서 오랜만에 반전을 노리는 코오롱제약에도 악재가 이어질 전망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적자를 기록한 코오롱제약은 지난해 영업이익 14억으로 반등하며 오랜만에 흑자를 맛봤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식약처 조사를 피할 수 없는 데다가, 지난해부터 불거진 인사권 문제로 인한 노사 대립 격화 등 회사 내부와 외부로 고초를 겪을 확률이 높아졌다.

코오롱제약 측은 이번 사건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어린이집이 전문의약품을 개별가정에 배포될때까지 어떠한 통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짊어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여러 언론 등에서 보도되고 있고 규제당국도 사건의 심각성에 무게를 두고있어 조만간 관련 사항이 업계에도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며 "기부라는 특수한 경우에 발생한 일이긴 해도 전문의약품 유통망에 구멍이 뚫린 건 사실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는 의약품 유통에 대한 더욱 강력한 장치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