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방명록 대신 한 ‘얇은 원판’에 서명을 남겼다. 이 원판이 바로 3나노미터(㎚) 반도체 웨이퍼다. 신기술인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반 공정이 세계 최초로 적용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대만 TSMC에 대항할 삼성전자의 ‘히든 카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3나노 공정 생산라인을 둘러본 바이든 대통령은 "겨우 몇 나노 두께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칩이 인류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며 "삼성이 주도하는 많은 기술 혁신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말은 한미 간 ‘반도체 동맹’의 신뢰관계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삼성전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한 신뢰와 높아진 위상을 미 고객사에도 각인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자리에는 주요 고객사인 퀄컴의 크리스티아누 아몬 CEO도 동행했다.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평택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평택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는 모습 / 삼성전자
2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 GAA 기반 3나노 1세대 반도체 양산에 나선다. 미국에서 투자와 협력을 가속화하면서 3나노 양산을 기점으로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3나노 반도체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고성능과 저전력을 요구하는 미래 산업용 제품에 적용될 예정이다.

GAA는 전력효율, 성능, 설계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 공정 미세화를 지속하는데 필수인 기술이다. 기존 5나노 공정보다 칩 면적은 35% 작고, 소비전력은 50% 줄어든다. 반면 처리속도는 30% 빠르다. TSMC가 2022년 7월부터 3나노 양산에 들어가는 기존 핀펫 방식보다 전력 효율을 더 높여주는 진화한 공정이다.

삼성전자 3나노 전략의 성공 관건은 수율(합격품 비율)이다. 3나노 양산 과정에서 수율만 담보된다면 GAA 공정은 TSMC와 파운드리 기술 격차를 단번에 뛰어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3나노 공정은 최근 안정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4월 28일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3나노 공정은 선단 공정 개발 체계 개선을 통해 단계별 개발 검증 강화로 수율 램프업 기간을 단축하고, 수익성을 향상해 공급 안정화를 추진 중이다"며 "향후 공정개발 가속화를 위해 신규 R&D(연구·개발) 라인 확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가 예정대로 3나노 공정에 돌입한다고 하면 TSMC에 비해 기술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시에 짓는 파운드리 신공장에 GAA 기술을 적용하며, 3나노 주도권 경쟁에서 승기 잡기에 나선다. TSMC의 3나노 공정 제품 양산 시기는 올해 하반기다.

삼성전자는 24일 시스템반도체 분야 투자 강화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 등 신사업을 중심으로 국내외 450조원을 중점 투자해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만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번 투자 확대로 파운드리 투자 규모도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은 기존에 없던 차별화된 차세대 생산 기술을 개발/적용해 3나노 이하 제품을 조기 양산할 계획이다"라며 "차세대 패키지 기술 확보로 연산칩과 메모리가 함께 탑재된 융복합 솔루션을 개발해 업계 선두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글로벌 선두로 나설 경우 삼성전자를 하나 더 만드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