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부산 강서구 남해고속도로 서부산요금소에서 현대차 아이오닉5가 톨게이트 충돌 사고로 전소됐다. 탑승자 2명은 숨졌다. 아이오닉5에는 SK온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화재 사고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충격이 가해진 배터리가 중요한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소방 당국은 전기차 배터리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은 결과 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배터리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번 전기차 화재사고에 ‘운전자 과실’ 프레임을 씌우는 일부 학계의 주장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국가기관 소견에 따라 화재 발생 이전에 운전자가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했다는 진단이다. 결과적으로 전기차 제조사와 배터리 공급사 모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막힌 논리다.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운전자가 어느 시점에 사망했느냐는 핵심 사안이 아니다. 충돌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운전자가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 사실은 충돌 3초 만에 차량 전체로 불길이 번졌다는 점이다.

만약 운전자가 사고 직후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불길이 이렇게 빨리 커졌다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 였다면 후속 조치라도 할 수 있지만, 전기차 폭발로 인한 화재에는 대응 자체가 불가한 셈이다.

화재 사고의 책임을 배터리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가혹한 처사지만, 배터리가 원인이 아닐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 깔고 가는 식의 대응 역시 옳은 것은 아니다. 내연기관차도 충돌 사고 후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의 화재 발생 비율이 더 높다는 데이터도 있다. 다만,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두고 소비자는 화재 발생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 전기차가 사고 후 폭발한다면, 친환경이니 연비절감이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번 사고는 명확한 원인 규명과 대비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던져줬다. SK온 뿐만 아니라 모든 배터리 제조사가 숙지해야 한다. 전기차 충돌 사고 후 배터리로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아주거나, 배터리의 열폭주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이 필요하다. 배터리의 안전성이 전기차의 대중화 속도를 높이는 바로미터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